황수원 본지 칼럼위원[거제박물관장·(사)경남박물관 협의회장]

사랑하는 아들아!

너가 입대한지도 벌써 3개월이 다되어간다. 집이나 학교에서 육체적인 노동은 그렇게 해보지 않은 너로서는 신병교육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 런지 하고 걱정했으나, 너는 무난히 신병교육을 마치고 우리나라 중동부 전선의 철책(GOP)근무를 자원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흡족해 했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 한 것 같아서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라면 국방의 의무를 회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고 국토를 방위한다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권리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G20정상회담직전에 바로 옆의 진지에 북한군의 총탄이 날아와서 신경이 곤두섰다는 말을 듣고  전방이라는 곳이 결코 안전한 곳도 아니며, 대한민국이 전쟁이 종식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아들아! 불과 몇 십 시간 전 연평도에 또 북한군의 포탄이 날아와 무고한 민간인이 2명이 죽고, 너 또래의 우리군인도 2명이 죽었고 십 수 명이 부상을 당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우리는 종전을 한 게 아니라 휴전을 하면서 잠시 전쟁을 멈추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그간 북한에 대해 감상적 민족주의나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진행된 모든 정책들이 진정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효한 정책도 아니며, 그들을 평화와 공동번영의 장으로 끌어낼 수단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가난한 북측의 동포를 생각한다면 농사를 지을 비료와 추위를 견딜 옷가지나 허기를 달랠 쌀을 준들 무엇이 아까우랴 만은, 우리가 지원하는 돈이나 물자가 정작 헐벗고 굶주린 동포에게는 나눠지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비인도적이며 호전적인 정치나 군의 수뇌부와 동포를 탄압하는 상부계층에 전달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며칠 전 TV에서 보니 인도적인 외국의 의사가 눈먼 사람을 치료하여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을 때 그 사람의 첫말이 "어버이 수령님, 위대한 김정일 동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어떠한 도움도 결국 그곳에서는 '위대한 어버이, 김정일'의 은혜로 변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씁쓸한 감정을 맛봐야 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세계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위한 노력의 시대라는 21세기를 살면서, 3대를 이어나가려는 권력세습과 독재와 통제와 억압이 아직도 횡행하는 저 사회를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국가라고 볼러도 좋을 것인지 반문하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 범휘야! 인류의 역사속에 평화를 위한 어떤 약속도 힘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결코 오래 갈 수가 없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회피하다보면 군대도 국민도 허약해지고, 마침내는 평화를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평화를 구걸하는 국가를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두고 보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그 국가는 사라진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강해져야 하고, 또한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전쟁은 정책의 연속'이라는 크라우제 빗쯔의 말이 생각난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책의 연속선상에, 그리고 국가의 자존과 긍지의 연속선상에 전쟁도 포함된다고 본다.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만약 전쟁이 난다면 아버지는 아들이 있는 철책선에 다시 자원입대하여 아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며칠째 군화도 못 벗고, 군복을 입은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느낀다.

국토방위를 위해 산화해간 수많은 젊은 영령들의 의로운 죽음을 기억하며, 더 이상의 양보는 나약함과 비겁함의 또 다른 의미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추운 날씨 몸 건강하고, 철책근무에 빈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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