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치돈 본지 칼럼위원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되었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주입식, 서열화 교육이 한창이었고, 지금은 체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당시의 현실은 구타와 가혹행위가 더 적당한 표현이라 할 정도로 많이 맞았고 기합도 엄청 받았다.

필자는 고등학교생활을 착실히(?)한 덕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을 만큼 맞아 본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하면 언제나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교련시간에 분독기(정확한 명칭인지는 가물하다)를 준비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이유로 반 전체가 운동에 나가 야구 방망이로 10대씩 맞은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 계산해 보니 교련선생님은 약 500번 이상의 풀스윙을 한 셈이다.

1학년 종례시간에 한 명이 담임선생님한테 뺨을 수십 차례 맞았는데 선생님이 차고 있던 시계가 풀려 시계를 풀어 놓고 더 강하게 때리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그 친구가 왜 맞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들 사람 되라고 더 잘 되라고 때린다고 했던 것 같다. 군대시절에는 이보다 더 많이 맞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고등학교는 순수와 열정이 넘치는 곳이지만 군대는 상명하복과 통제된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인가 보다.

지난 11월13일 토요일 저녁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들은 졸업 20주년을 맞아 은사님들을 모시고 사은회를 하였다.

졸업하고 처음 보는 친구들 선생님, 가끔은 보는 얼굴들,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동기였는지 조차 기억에 없는 모습들도 많았다.

왜냐하면 필자의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여학생의 경우 대부분 알지 못하며, 필자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출신의 여학생은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반가운 얼굴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든 전혀 알지 못했던 친구든 금방 반말하고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고등학교 동기만큼 편한 사이도 없는 모양이다.

아무런 계산이 없었던 시절, 한창 성장하고 성숙하던 가장 순수한 감정의 시절,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내며 같은 생각,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전 그날의 교련선생님도, 1학년 담임선생님도 사은회에 오셨다. 한 분은 정년을 앞두고 계시며 한 분은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았다.

많은 여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강렬하고 아름다운 착각(?)의 기억 속에 빠진 오래전 그날의 총각선생님이 이제는 오십을 바라보는 고참선생님이 되어계셨다.

은퇴하셨지만 근엄한 표정과 우람한 체격의 아직도 정정하신 선생님의 빼어난 음주가무 실력, 마치 7080콘서트와 같은 분위기로 기타를 치며 애끊는 듯 한 가창력으로 중년이 된 동기 아줌마들을 한 방에 훅 보내버린 선생님으로 인해 우리들은 즐거웠다.

그렇게 맞고 혼나고 기합을 받았지만 지금 우리들은 반듯하게(?) 우리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년세대가 되었다.

더 하고 싶은 말들은 많지만 지면 관계상 이만 줄이고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떨어지는 낙엽에도 괴로워하고 왠지 우산 없이 비속을 거닐며 세상고민을 혼자 다 짊어지고자 했던 감수성 넘치는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서, 고등학교 하면 누구나 생각나는 피천득의 '인연' 중 마지막 구절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고 한다'를 우리 모두 애절하게 묵상하며 지금 바로 오래전 그날 아무런 계산이 없었던 순수했던 자신을 발견하는 11월이 되길 바란다.

사은회를 무사히 마치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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