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세상 일이든 우리 지역 사회 일이든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일단 시작하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는 한 중도에서 내 던져서는 안된다.

우직할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그저 꾸준히 이어 나갈 때, 그 안에서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맺히는 소식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뜸도 들기 전에 도중에 내팽겨치고 말았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모처럼 큰마음을 내어 애써 해 오다가 재미가 없다고 해서, 또는 아무 효험도 없다고 해서 도중에 하차 해버린 일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를 원망하고 남을 탓하고 사회를 비관하는 일 모두다.

무슨 일에나 고비가 있다. 그 고비도 몇 번씩 있게 마련이다. 그 때마다 그 고비를 극복하면 의지력과 지혜가 열린다.

적어도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어떤 효험이나 공덕을 바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해타산이고 계약이지 바른 믿음이 아니다.

도원 선사는 '정법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를 위해서 하려고 하는 온갖 종교적인 태도는 돌을 안고 물 위에 뜨려는 것과 같다. 먼저 '나'라고 하는 무거운 돌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불법의 드넓은 바다에 떠올라 진실한 자기를 살리게 될 것이다."

'나'를 버린다는 것은 아집, 곧 자기 자신의 집착에서 떠나라는 말이다. 자기중심적이요 이기적인 고정 관념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자신을 옴짝 못하도록 옭아매게 된다.

그러니 자신을 텅텅 비워 무심해지면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어 불법의 바다에서 마음대로 유유자적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불법은 어떤 명예나 이익, 혹은 과보나 영험을 얻기 위해서 닦아서는 안된다. 다만 불법을 위해서 불법을 닦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려고 하는 언동은 아직도 아집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물(財物)과 이성(異性)을 바른생각(正念)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것은 이성보다 더 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것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마련하여 재물과 이성을 엄금하신 것이다.

"이성을 대하거든 호랑이와 뱀처럼 보고, 몸소 금이나 옥을 가까이 할 때는 나무나 풀과 같이 보라"고 하셨다.

야운 선사는 "비록 어두운 방에 있더라도 큰 손님을 대하듯 하고, 남이 볼 때나 안볼 때나 한결같이 해서 안과 밖을 달리 하지 말라. 마음이 청정하면 선신(善神)이 수호하고, 이성에 연연하면 천신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선신이 수호하면 험난한 곳에서도 어려움이 없고, 천신들이 용납하지 않으면 편안한 곳에서라도 불안이 따른다. 탐욕은 염라왕이 지옥으로 끌어들이고, 맑은 행은 아미타불이 연화대로 맞이한다. 고랑치고 지옥가면 천 가지 고통. 배위에 연꽃 피니 만가지 기쁨"이라고 하셨다.

자경문의 옛 거울에 우리 얼굴을 비춰 보려고 한다. 예전 어른들의 가르침에 "재색(財色)의 화는 독사보다 심하다"는 말씀이 있다.

재물과 이성의 인력은 그 만큼 강인하기 때문에 거기에 일단 휘말리면 두고 두고 헤어날 기약이 없다는 뜻이다.

독사에 물리면 현재의 몸만 희생 되지만, 재물이나 이성의 그물에 걸리면 그 업연(業緣)으로 인해 세세생생(世世生生) 얽혀 들게 되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과 같다. 한번 입에 댈 것도 못 되는 데 그 것을 핥다가 혀를 상한다. 정과 사랑은 그 어떤 재앙도 꺼리지 않는다. 설사 호랑이 입에 들어가는 재난이 있더라도 깊이 깊이 빠져든다. 불법을 위해 불법을 닦으라는 말은 자기 밖에서, 혹은 마음 밖에서 따로 불법을 찾지 말라는 뜻이다. 자기자신의 일상생활 그대로가 불법이 되고 법계(法界)가 된다는 뜻이다"고 하셨다.

우리 자신에 마음에 돌을 내리면 무거운 짐이 없을 것이다. 짐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도로에 핀 코스모스는 계절에 순응하는 자연의 시간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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