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운 칼럼위원

윤병운 거제시 농업경영인 연합회장
1997년 겨울, 외화는 바닥나고 IMF 정국으로 돌입한다.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아야 했고 실업자는 늘어났다. 농업인들 또한 예외일순 없었다. 사료값, 비료값을 포함한 생산비는 폭등했고 연대보증으로 인한 파산은 줄을 이었다. 나라에서는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했고 필자 또한 결혼반지며 아이들 돌반지까지 들고 나와 동참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차라리 그건 쉬운 일이었다. 대통령이, 우리의 손으로 뽑은 일국의 대통령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미국의 일개 가수한테까지 달러를 빌려 달라고 했지만 그래서 대단히 부끄러웠고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그건 차라리 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돈을 빌리는 일이었으니까, 밥이 없어서  쌀을 빌리러 간 건 아니니까….

그렇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때보다도 훨씬 나쁘다고 본다. 식량 자급율 25%! 세 끼 식사 중 두 끼 이상은 외국에 의존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때 만약 대통령이 돈이 아니고 쌀을 빌리러 갔다면 어떠했을까? 그건 빌린다기보다 구걸에 가깝지 않았겠는가?

그 우려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농업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며칠 전 배추값 폭등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배추 한 포기에 2만원을 넘었으니까 말이다.

이는  유통구조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수입으로 그것을 대체하겠다는 것이란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고랭지 배추의 25%가 감소했다. 농산물은 특성상 5%만 감소해도 폭등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데도 정부는 안일했다. 수입으로 대체하겠다니 무사안일의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세계 기후 이변의 빈도는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지난 여름 러시아의 폭염으로 밀 생산량이 감소하자 세계 각 정부에서는 수출 물량을 줄였고 이로 인해 세계 밀곡 물가는 폭등했다.

거기에다 화성 연료의 고갈로 인하여 옥수수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 연료 사용 확대로 인하여 세계 곡물 가격의 고공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쌀만이 95%의 자급율을 유지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곡물 자급율은 평균 4%대이다.

가축이 먹는 사료 곡물을 포함하자면 96%정도를 수입에 의존한다는 말이다. 세계의 큰손들은 인공위성의 사진으로 전 세계의 농작물 작황을 분석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식량이 미끼가 되어 국제사회 속에서 눈치를 보거나 혹은 고립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식량자급율을 높이지 않고서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IT강국 운운하며 SAMSUNG이니 또는 LG니 하는 대표 기업의 로고가 헐리웃 영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한들 배고플 때  휴대폰을 삶아 먹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루 빨리 350만 우리 농민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배추값 파동에서 오는 이런 징후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를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간곡히 바란다.

그리고 몇 만 톤의 배추를 2,000원에 판매하겠다고 예약 받는 농협은 근시안적이고 전시적인 행정에 치우치지 말고 쌀값 폭락 사태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이 나라 식량주권과 농민의 생존권에 전념하는, 그래서 제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총성없는 전쟁이 소리 없이 우리의 발 밑에까지 다가왔다. 태평양에서 보급로가 끊긴 일본군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조선인의 인육을 먹고 버텼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던져준 지금, 우리가 우려하는 식량 전쟁 속에서는 으례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내가 지금 지나친 상상을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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