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원 본지 칼럼위원

2010년 달력의 겉표지를 뜯어 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이다. 흐드러지게 피던 목련과 속절없이 지던 벚꽃을 보고 봄인 줄로만 알았는데, 창문을 열면 초록은 벌써 청록으로 바뀌어 있어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이 짧은 신음을 토하게 한다.

단군이래 반만년의 역사가 흐른 지금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국가 중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들 만큼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불과 60년 전에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나라가 이제 온 세계의 주목을 받고, 외국의 곳곳에서 한국의 성장과정을 배우겠다고 많은 인재들이 찾아온다.

10만㎢ 정도의 면적과 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이 땅에서 우리는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그것도 이념적인 대립으로 민족이 나뉘어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을 안고서 말이다. 그래서 '원더풀 코리아'다.

이런 나라에서 거제도에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1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뒤섞여 사는 400㎢의 이 섬은 업무차 다녀가던, 관광을 위해 다녀가던지 한 해에 약 450만 명 정도의 외래인이 움직인다. 인구 23만 명의 이 섬은 GRD P(역내 총생산)규모로 따지면 울산과 수위를 다투는 곳이다.

잘사는 한국에서도 최고로 잘사는 도시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한국을 아직도 선진국이라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문화에서 찾고 싶다. 경제적인 부분이라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다. 그래서 문화에서 찾아보자는 말이다.

거제도에는 여러 나라, 여러 민족, 여러 고장의 문화가 혼재되어있다. 농촌문화도 어촌문화도 도시문화도 몽땅 뒤섞여 있는 문화적 퓨전의 도시이다. 국제화가 다양한 문화의 혼재를 얘기한다면 거제는 국제화된 도시다.

그러나 다르게 얘기한다면 이는 자기정체성의 상실이고, 문화적 혼돈의 상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화적 혼돈의 상태, 자기민족의 아이덴티티를 방기한 현실을 두고 아마도 그들은 한국을 선진국이라 부르기에는 그들의 문화적 잣대로 볼 때 자존심이 허용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말이 있다.'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세계적인 것을 위해 우리는 향토적인 것을 외면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문화적이다'라는 생각도 해 보아야 한다. 한류가 세계적인 것으로 남기위해서는 그 에너지를 우리민족의 고유한 문화에서 계속 공급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거제가 매력적인 도시로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거제도 고유의 문화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거제도는 신석기 이후부터 사람의 생존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런 중단없는 삶의 현장들이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거제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것이 거제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는 경제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았고,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살찐 돼지'를 우리가 추구할 인생의 최고가치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거제에 살면서 거제를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거제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고, 우리역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그 가치에 대한 존경이 없는 한 우리는 여전히 문화의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단재 선생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역사는 신(神)이고 국가는 형(形)이다'라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경없이는 정신은 없고 몸통만 있는 존재와 같고, 어떠한 일도 사상누각(砂上樓閣)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국가이건 사회이건 영속하기위한 공동체의 가치로서 물질적 풍요는 너무 쉽게 그 한계를 드러내기에,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기형적 성장이 아니라 정신(문화)과의 균형적 성장만이 미래를 보장하고 현재의 이 발전 추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귀를 닫고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5,000년 역사속에 가장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시대로, 선진국이라는 기적을 이룬 세대로 역사는 우리 후손들에게 말해 줄 것이다.  <(사)경남 박물관 협의회장·거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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