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강 옥포교회 목사

구약성경에 기록된 한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40년 광야시대를 마감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한 후 그 땅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갓, 르우벤, 므낫세 반(半)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 요단 동편 땅을 이미 분배받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홉 지파와 반(半) 지파가 요단 서편의 땅을 분배받은 것이지요. 그러나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자신들이 살 땅을 이미 얻었다는 이유로 요단 서편의 땅을 차지하는 일에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이스라엘이고 종교적, 민족적으로 공동체라는 의식으로 다른 지파들의 가나안 점령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그런데 두 지파와 반 지파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요단 서편 사람들이 보고 오해할 만한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요단 동편의 사람들이 요단을 건넌 후 강 가에 큰 제단을 만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곳에서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율법을 어기고 다른 곳에서 임의로 제사를 드릴 경우에 그 죄를 범한 사람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요단강가에 제단을 쌓는 일은 응징해야 할 일이요 죽어 마땅한 행위였지요.

그때 비느하스라는 지혜로운 지도자는 분노하는 백성들을 자제시키고 백성들의 대표들과 함께 요단 동편으로 찾아갑니다. 그들에게 제단을 만들어 놓은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요단 동편 사람들이 설명합니다. 그것은 요단강이라는 자연적인 분계선으로 동과 서로 나누어진 그들 사이에 신앙적인 일치감과 민족적인 동질감을 후대에게도 오랫동안 기억시키기 위함이었다구요.

그러니까 요단 서편의 사람들이 본 단은 분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치를 위한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요단 서편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만 판단해서 오해한 것입니다.

만일 그 오해가 대화를 통해 해소되지 않았다면 요단 동편의 사람들과 서편의 사람들은 피비린내 나는 분쟁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지혜로운 지도자를 통해, 오해를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관계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관계에서 성공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 형성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지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로를 이해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타인의 진심과 의도를 알 수 없이 오직 드러나 보이는 결과와 현상으로만 사건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오해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관계에서는 반드시 오해에서 이해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지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을 때 공동체는 갈등과 분쟁을 넘어 일치와 화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나와 그들. 우리 사회에는 오해와 갈등에서 이해와 화해로 나아가야 할 많은 관계들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관계 속에서 내가 먼저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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