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본지 칼럼위원

#1

지난 2월 5일 제주시 K중학교 졸업식날, 여학생 7명은 행사가 끝난 뒤 선배들의 부름을 받고 인적이 드문 포구로 나갔다.

선배들은 미리 준비한 가위와 면도칼로 교복과 스타킹, 속옷까지 찢고 거의 반나체가 된 후배들을 수심 2m가 넘는 바다에 빠뜨려 버린다. 선배들은 재미난 구경꺼리를 놓칠까봐 폰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다행히 인근에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해녀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2

2월 11일 경기도 고양시 모중학교 졸업식 후 선배들이 후배들을 발가벗기고 알몸인 상태로 눈 위를 뒹굴게 한다. 살이 터지는 추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선배는 자기가 당했던 그대로 후배들에게 재연했다.

#3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서는 팬티 차림의 남학생들과 블라우스, 치마, 속옷이 찢긴 여학생들이 서로 밀가루와 계란을 집어던지고 옷을 찢는 괴상망측한 행위를 벌였다.

#4

경기도 고양시 한 중학교 남녀졸업생 15명이 대낮 아파트 주변에서 완전 나체로 밀가루와 날달걀을 뒤집어 쓴 채 인간 피라미드를 쌓거나 담 아래 서 있는 동영상 40여장이 인터넷에 퍼져 충격을 주었다.
 

어느 도시에서는 중학생 20여명이 팬티만 입은 채로 시내 한복판 인파가 붐비는 도심을 행진하는가 하면, 어느 곳에서는 여고생이 브래지어만으로 거리를 당당하게 걸어가고, 또 어디서는 알몸인 여중생 몸에 케첩을 뿌리는 선배, 브래지어 끈 자르기도 부족해서 벌리는 '알몸 파티'가 '졸업빵' 행사 메뉴가 되고 말았다.

옛날 졸업식 풍경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밀가루 세례'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싱거운 해프닝에 불과하다. 폭력의 수준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후배들은 말한다. 선배들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선배들은 말한다. 우리도 작년 이맘 때 똑 같이 당했다고.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어떤 지식인은 말한다. '발가벗겨진 알몸 졸업식을 통해 이 땅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무자비한 폭력성과 몰염치함과 부도덕함을 과감하게 온누리에 드러내 주었다고 하겠다. 이것이 바로 이 땅 어린이들의 순진하면서도 발랄한 역사 의식이다.'라고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청소년들의 이런 행동의 일면에는 다분히 장난기가 있거나 자기표현의 수단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악용하여 이념적 해석으로 재생산하려는 의도는 경계해야 한다.

학교 다니며 공부에 찌들려야했던 스트레스와 졸업이라는 해방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폭력의 뒤풀이까지 미화할 수는 없다.

폭력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범죄다. 작년 12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전국 초·중·고 64개교 학생 4,07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2%가 학교폭력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폭력 피해학생의 16%는 '죽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학교폭력은 심각하다.

학교폭력이 학교 자체의 정화능력을 상실했다면 불행한 일이지만 강력한 법과 제도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뿌리 뽑아야 한다. 내 아들이, 내 딸이 졸업식 후에 그 황당한 꼴을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넘길 일은 아닐 것이다. 세상 무서워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겠느냐는 부모의 푸념을 그냥 흘러 들을 일이 아니다.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퍼포먼스야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올해가 끝이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옛날 얘기한다고 웃겠지만 졸업식이 끝나면 온 식구가 중국집에 모여 자장면 먹으며 좋아하던 시절이 오히려 낭만적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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