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본지칼럼위원

1. 명절 연휴 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방영하는 텔레비전 영화 중의 하나가 '1번가의 기적'이다. 재개발을 앞둔 산동네 1번가를 배경으로 철거 전문 건달 필제(임창정)와 헝그리 복서 명란(하지원)이 벌이는 웃음과 감동의 코믹 드라마다.

헝그리 복서 영화로는 2005년 개봉한 신데렐라맨(Cinderella Man)을 뺄 수 없다. 미국 대공항 때 가족들의 생계 때문에 링에 서야했던 퇴물 복서 브래독이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실화를 다룬 스포츠 드라마이다.

1970년대까지의 시대 상황은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던 시절이다. 한 마디로 배고픈 시절이었다.

이 시대의 스포츠는 먹고 살기위한 처절한 투쟁기였다.

'스포츠 정신'이 '헝그리 정신'이었다. 홍수환 선수가 카라스키야 선수에게 4번 다운 당하고도 역전 KO승을 거둔 것이나, 김득구 선수가 미국의 맨시니 선수에게 무수히 얻어맞아 링 위에서 목숨을 잃을 때까지 쓰러지면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 저변에 헝그리 정신이 깔려 있었다.

자신의 명예는 나중 일이고 스포츠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기에 한국 스포츠는 간혹 빛을 보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스포츠다운 스포츠는 기대할 수 없었다.
 
2. 80년대 이후 한국 스포츠는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시기다. 잘살게 되면서부터 스포츠는 소외된다. 복싱이 좋은 예다. 밑바닥 생활에서 인생 역전을 꿈꾸던 복싱이 헝그리 정신의 퇴조와 함께 배부른 복싱은 없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 임춘애라는 육상선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승 후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라면 먹으면서 운동했어요. 우유 마시는 친구가 부러웠구요"라는 그 한마디 때문에 온 국민들은 함께 가슴 아파했다.

허풍 떨기 좋아하는 어느 신문은 '임춘애는 17년간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 때문에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삐쩍 마른 체격은 라면 밖에 먹지 못한 탓이라 믿고 안타까워했다.

두 해 후인 1988년 올림픽에서 무엇인가 일을 해낼 것이라고 믿었던 국민들은 임춘애가 예선에서 탈락하자 '라면 먹던 애가 배가 불렀군'하며 그를 보는 시선은 차가워지고 말았다.

하나의 예지만 잘살게 된 것은 한국스포츠의 위기였다.
 
3. 2000년대에 들어서며 스포츠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G세대의 등장은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는다.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했던 세대와는 다르게 G세대는 8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나 가난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자란 글로벌(global) 세대다.

이들은 좋아서 하는 일에는 돈과 등치시키려 하지 않는다. 마치 스포츠(sports)의 어원이 '놀다' '즐기다'라는 의미의 'disport'에서 온 것처럼 즐김의 스포츠에 매료된다.

스포츠 최고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조차 금메달에 집착하기 보다는 즐기다 보니 얻어지는 소산에 불과하며, 금메달의 수로 나라 순위를 정하는 것도 촌스럽게 생각한다.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말의 의미가 몸에 배여 버린 세대다.

스포츠란 놀이면서 생활이다. 그냥 좋아서 하고, 좋아서 즐기는 게임이다. 보는 사람도 이제는 그냥 즐기는 축제일뿐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 않는다.

전에는 은메달을 따고도 죄인인양 고개 숙였지만 이제는 색깔에 관계없이 당당하고, 메달을 목에 걸지 않아도 유쾌하게 웃을 줄 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유난히 잘하게 된 것도 스포츠가 즐김의 미학으로 승화되었음을 확신시켜 주는 계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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