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진 문동교회 목사

삶의 어느 시점인지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새해를 맞이 할 때 마다 화살 같이 빠른 시간의 흐름을 의식한다. "또 한해가 지나버렸다"는 현실이 시간의 무상(Transitoriness)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나를 심각하게 만든 것은 어느 시점 부턴가 "새해가 와도 새로운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식으로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어린시절에는 언제나 세상을 '경의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고, 자연을 보면 시인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을 더 깊이 음미할수록 심미적 감수성을 잃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가슴이 울렁거림을 느낀다.

세상살이가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이다. 어린시절에 그 찬란 했던 세상은 더 이상 나의 경의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어느 순간 부턴가 어린시절에 가졌던 세상을 바라보던 환희의 처녀성, 혹은 원시성(Pri-mordialty)을 상실해 버렸던 것이다.

내가 만약에 신(The God)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허무주의자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 말은 내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소망 때문에 허무주의를 극복 했다는 뜻이 아니다. 신을 체험하게 된 후부터 나는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 할 수 있는 관점(Perspective)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세상의 현란함을 통해 누렸던 처녀성은 세월이 들어 철이 들면 들수록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신은 나에게 "겉 사람(외형)은 부패하여도 속사람(내면)이 날마다 새로와 지는" 중생(거듭남-second birth,born again)의 기쁨을 깨우쳐 주었다.

시간속에 들어와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영원자를 만나게 된 후 부터는 시간의 일상성(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현란한 세상을 통해 경험했던 그 큰 환희와 기쁨을 넘어선 더 신비롭고 찬란한 영광을 신의 관점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신(The God)을 경험한 후 알게 된 것은 역사는 곧 카이로스(Kairos)라는 것이다. 카이로스는 시간 자체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연대기)에 대한 의미를 현실삶속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역사속에 나타났던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기속에 나타난 사건들을 의미 있게 해석하여 인간을 불행으로 이끌어간 요소들을 타파하고 그것에서 얻은 결론적 교훈으로 현실을 인간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변혁 시키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를 통하여 접한 신(The God)은 이 땅에 신(The God)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역사의 한 순간 순간을 자신의 말씀에 빗대어 의미있게 해석하여 사랑으로 변화 시킬 것을 명하셨다.

힘의 논리에 의해 전개되는 도무지 변화될 것 같지 않는 약육강식의 현실세계를 사랑으로 변화 시킬 것을 명령하셨다. 세상의 힘의 논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역사적 현실속에 신의 나라를 구현할 것을 명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신의 명령에 함께 동참할 사람들과 함께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역사 속에 나타난 사건의 조각들을 역사에 대한 의미해석(Kairos)으로 궁구(窮究)하며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랑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