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물 스트레스국’으로 분류돼 정부, 홍보예산 투입 등 정책 전환

‘적게 쓰자’ 대신 ‘효율적으로 쓰자’로 민관 함께 시민의식 개선 나서

대서양에 접한 영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교적 사계절 일정하게 비가 내린다. 지형적으로도 섬 국가인 탓에 국민 대부분이 물을 아껴야 할 자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영국도 최근 들어 동남부 지역의 인구가 급증하고 물 사용량이 늘면서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때문에 영국 정부와 시민단체에서는 국민의 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물 사용량을 줄이는 캠페인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영국 '템즈강'이 민간환경단체들의 대대적인 수자원 관리 노력으로 제 모습을 찾고 있다.

◆영국 남동부지역 물 부족 현실화, 독특한 수도요금 부과체계도 한 몫

현재 영국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150ℓ. 앞으로 이웃인 독일과 네덜란드의 1인당 120ℓ와 비슷한 130ℓ 수준으로 낮춘다는 게 영국 정부의 생각이다.

 물 소비량 중 상업·가정용수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이는 영국 남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물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런던은 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수요 급증으로 가정용수 수요가 늘어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

영국인들의 물 절약 의식이 약한 데는 독특한 수도요금 부과체계의 작용이 크다. 수도계량기인 미터기가 설치된 가구가 전체의 30%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 가구에서 사용하는 상수도 사용량이 정확하지 않아 물 공급회사에서는 미터기 장착 가구 중에서 표본을 추출해 이를 대상으로 평균 사용량을 산출한 뒤 부동산 시세에 비례해 미터기 미설치 가구에 대해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실제 사용량에 상관없이 부자가 많이 내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미설치 가구가 물 사용량을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다. 단 상업시설은 미터기가 모두 설치돼 있다. 수도요금은 1년에 2번 부과되며 연평균 수도요금은 300~400파운드(58만~76만 원 정도)이다.

이런 실정이지만 미터기 설치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영국 정부에서는 신도시 등에 짓는 신규 주택에 대해서 우선으로 미터기 설치를 강제하고 가구당 최대 사용가능량을 제한할 방침이다.

◆영국 정부 ‘물 절략 캠페인’으로 국민 인식전환 노력

영국 정부는 환경농림부 주도로 3년에 걸쳐 이산화탄소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캠페인은 지난해 8월부터 물 절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전에도 물 절약 캠페인은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물 부족 국가란 것을 강조하고 물의 경제적 가치를 부각시킨 기존 캠페인은 국민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영국 정부는 일상생활에서 물을 얼마나 사용하며, 또 얼마나 낭비하는지를 인식시키는 것으로 캠페인의 방향을 돌렸다.

환경농림부는 미디어를 활용한 물 절약 공익광고에 나섰다.

‘샤워를 필요 이상 오래 하면 1분당 9ℓ의 물이 낭비된다’ ‘양치하는 동안 수도꼭지를 열어두면 1분에 6ℓ의 물이 낭비된다’ 등의 내용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한 TV용 공익광고는 방송국들이 정부 공영캠페인에 할애해 주는 광고시간에 집중적으로 방영됐다. 또 포스터 제작과 라디오, 인터넷 포털, 신문 광고 등에 지난해 11월 초까지 6주 동안 100만 파운드(약 19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캠페인이 끝나면 이 기간을 전후해 국민의 물 절약 인식 변화도 조사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영국 환경농림부에서는 기존 사용량보다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을 20ℓ 줄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피터 지긴스 환경농림부 수자원국장은 “물 절약 캠페인을 진행하며 시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다”면서 “물 절약은 정부 혼자서는 안 되며 기업과 시민단체와 연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영국 내 20개 물 기업 모임인 워터UK와도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물 절약을 에너지 절약과도 연계해 홍보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줄이기에 대한 시민들의 환경의식이 높은 점에 착안한 것이다.

토니 맥두걸 수자원국 전략고문은 “시민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동감하지만 따뜻한 물을 쓰는 것이 이산화탄소를 다량으로 발생시키는 일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며 “이 점에 착안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캠페인과 물 절약 캠페인을 연계해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적극적인 수자원보호 운동에 동참

영국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템즈(Thams)21’과 ‘워터와이즈(Waterwise)’는 정부의 물 관리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물 절약 캠페인은 물론 물 아이디어 제안 등 다양한 수자원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템즈21은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즈강 본류와 지류, 샛강 등의 수자원 관리, 생태 보호활동을 펼치는 민간 환경단체다.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템즈강을 생태적으로 되살리는데 적극 앞장서고 있다.

데비 리치(Deddie Leach) 템즈21 사무총장은 “현재 템즈강은 125종의 어류가 살 정도로 환경이 개선됐다”면서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대비해 시민과 자원봉사자들이 더욱 아름다운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NGO들이 캠페인이나 대정부 견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워터와이즈는 물 사용 효율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정부에 제공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니치 러셀(Nicci Russell) 워터와이즈 정책실장은 “물 정책의 전환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가 직접 원인으로 배출량의 5%가 각 가정에서 발생한다”면서 “물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내용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니 인터뷰>
선진국의 육식이 물 부족 부추긴다
공급중심 아닌 수요중심 물 관리 필요
커피 한 잔(125㎖)에 140ℓ, 햄버거 한 개(150g)에 2,400ℓ, 청바지 한 벌에 1만1,000ℓ….

이는 각 제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되는 물의 총량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은 1인당 170ℓ이며 세계인 평균은 약 90ℓ다.

하지만 이 물은 씻고, 음식을 만들고, 마시고, 청소하는 데 사용되는 ‘눈에 보이는’ 물이다. 이처럼 직접적으로 소비하는 물이 아닌 제품을 사용하거나 먹으면서 간접적으로 소비하는 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간접적으로 소비하는 물을 나타내는 개념이 ‘가상수(virtual water)’다.

가상수는 지구의 기본 자원의 하나인 물을 단위로 해 인간이 소비하는 모든 물건을 정량화한 개념이다. 중동의 물 부족 문제를 연구하면서 1993년 가상수 개념을 창시한 이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대학 토니 앨런 석좌교수다.

EU의 수자원 정책 고문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가상수 개념을 통해 물이라는 자원의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물이 풍부한 국가는 가상수가 많이 드는 품목을 생산해 수출하고 물이 부족한 국가는 가상수 소비가 적은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비가 많은 품목을 수입하면 물의 재분배로 불균형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상수 개념을 적용해 전 세계적으로 국지적인 물 부족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앨런 교수는 물 부족은 강력한 인구 억제와 함께 소비 패턴의 변화로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채식보다 육식이 생산 과정에서 훨씬 많은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진국들의 육류 소비가 물 부족을 부추기고 있다”며 “더욱 우려되는 것은 18억 인구의 중국에서 육류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물 사용량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 사용량을 간접적으로 이용하는 양까지 포함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앨런 교수의 견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 유럽국가 보다는 물을 적게 사용하고 있다.

앨런 교수는 “유럽 국가들은 버리는 음식이 한국보다 30% 정도 많다”며 “이는 유럽인들이 먹는 식량을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이 30% 더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앨런 교수는 앞으로의 물 정책은 공급 위주에서 벗어나 수요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공급량을 늘리는 건 한계에 도달했으므로 수요량을 줄이는 데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며 “10%든 20%든 목표를 정해 물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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