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본지 칼럼위원

논어 술이(述而)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三人行 必有我師焉)」고 하시면서 그들 중에 좋은 점(善)은 보고 따르고, 좋지 않은 점(不善)은 보고 내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다 나에게는 스승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비슷한 말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나 반면교사(反面敎師)도 있다.

글의 서두에 융통성 없는 국어선생의 딱딱한 강의 같은 말을 하는 이유를 독자는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보나마나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칼럼을 읽고나면 지금까지 많은 논객들이 다루던‘두바이’문제의 접근과는 또 다른 일면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두바이는 어떤 나라인가? 인구 145만 명에 국토래야 겨우 제주도 크기의 2,1배 정도지만 그조차 90%가 사막으로 이루어진 중동의 작은 토후국에 불과하다.

그런 땅이 ‘모래 위의 기적’을 이루면서 환상적이고 모든 것이 가능한 낙원으로 바라  보았다. 세계 사람들은 두바이를 벤치마킹하자며 참으로 부러워했고, 두바이 최고 경영자의 창조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열사(熱砂)의 땅에서도 인공 스키장을 만드는 발상의 전환으로 90년대 초반까지도 허허벌판이었던 도시를 상전벽해(桑田碧海:뽕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된다는 뜻) 시켰던 두바이가, 590억 달러의 채무 상환을 유예하자는 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세계 시장은 일시에 큰 혼란에 빠졌다.

어떤 사람은 두바이( Dubai)란 말이 아랍어로 「메뚜기」라는 의미도 있는데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휘청거린 두바이 경제의 원인을 무리한 투자와 외국자본에 의존한 성장전략, 그리고 부동산 거래의 침체라고 진단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 있는 허무의 진실은 간과했다.

두바이에서 생활하다 온 어느 교민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두바이에는 자국민 20%와 외국인 80%로 구성된 철저한 20대 80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쉽게 말해 돈벌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80의 사람들에게는 조국애가 있는 게 아니고 일해 준만큼 돈 받는 일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의 능률은 오를지 몰라도 전체적 조화는 이룰 수 없다. 돈 안주면 일을 않으니까 나라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내 몰라라하니 두바이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바로 이거다. 여기서 「삼인행 필유아사언」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두바이의 신화와 리더십이라는 선(善)이 스승이었다면, 무너져 내린 두바이의 허상(不善)도 스승이 되어야 한다.

거제는 두바이와 너무나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갑자기 팽창한 산업도시로 20대 80의 배타적 문화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제에서 돈벌기가 틀렸다 싶으면 떠나갈 사람이 80이다. 어느 날 조선경기가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거제의 황폐함은 일순 패닉(恐慌)으로 빠질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거제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가 거제 사람이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거제의 미래는 없다. 참 딱하다. 거제시의 생존전략을 두바이는 암시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들을 스승으로 본을 삼지 못한다.

그 교민의 마지막 한마디로 그냥 흘러 보낼 수 없었다.「두바이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사람들이다.

예컨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온다고 전날 저녁 갑자기 임시공휴일을 선포해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나라다.」 물론 파업도 노조결성도 어떠한 집단행동도 할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그냥 시키는 일에만 충실할 뿐 개개인의 창의적 사고는 없다는 것이다.


창의적 사고, 그게 바로 거제의 앞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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