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강원도 홍천군 깊은 산골 희망리에 이(李)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와 용(龍)씨 성을 가진 할머니 부부가 살고 있었다. 뼈 빠지게 일해야 먹고 살만큼 가난했지만 부부는 행복했다. 그런데 일은 참으로 우연한 데서 왔다. 남편 이두용 할아버지가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갔다가 담뱃불을 잘못 버려 산불을 내고 말았다.

불은 크게 번지기 전에 진화 되었지만 국유림 훼손에 대한 책임은 면할 수 없었다. 산불피해 변상금이 13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살림에 일시에 납부하기는 어려웠다. 홍천 국유림관리소는 딱한 형편을 고려하여 일시불 대신에 20년 동안 분할 상환하도록 해주었다.

얼마 후 산불의 직접 원인제공자였던 할아버지가 불행하게도 중풍을 앓게 되고 그로인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운명하기 전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내 대신 당신이라도 그 돈을 꼭 갚아 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아마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그 돈을 갚지 못한 게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혼자 남은 용할머니는 외롭게 3남1녀를 키우면서도 돈만 생기면 꼬박꼬박 벌금을 납부했다. 농사일이 어려울 때는 남의 집 허드렛일까지 해가며 드디어 20년 만에 감격적인 마지막 돈을 납부하게 된다.

용할머니에게 20년은 참으로 길었을 것이다. 엄격히 따지면 산불을 낸 장본인도 아니면서 남편의 벌금을 대신해서 갚아준 것이다. 용할머니가 마지막 벌금을 내고 나서 「20년 동안 가슴이 답답했는데 이제는 후련하다. 남편도 저승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1년 11월 10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내용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130만원이라는 돈이 있는 자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눈물겨운 돈이다.

성경 마가복음 12장 41절에서 44절까지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께서 성전 연보 궤에 무리들이 돈 넣는 것을 보고 있었다. 부자들은 많이 넣었지만,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고드란트을 넣는 것을 보았다.

렙돈은 팔레스타인에서 통용되는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이며, 두 렙돈이면 로마의 화폐단위로 한고드란트에 해당한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도록 두 단위를 함께 말해 주고 있다.

과부가 성전 연금 궤에 넣은 두 렙돈은 일용 근로자의 하루 품삯이다. 부자는 많은 재산 중에 일부에 해당하지만 가난한 과부에게는 하루의 품삯 곧 생활비 전부를 바친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에게 이르시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마치 용할머니가 20년 동안 갚은 130만원이 있는 자의 130억보다 더 값진 것처럼.

대개의 사람들은 용할머니와 같은 마음이다. 전기세나 수도세가 나오면 날짜를 넘기지 않고 납부하고, 혹시 교통범칙금이 나와도 아무 군소리 없이 제 때에 낸다. 안내고 배기는 간 큰 소시민은 없다. 법 무서운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도에 의하면 10억 이상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건강보험료를 미납한 사람이 9천여명이라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엊그제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국세 10억 이상 체납자 656명의 명단이 발표되었는데 이들의 총 체납액이 2조5천417억원이라니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다.

국세 최고 미납자의 금액이 560억인데 이는 홍천 용할머니의 130만원에 비하면 무려 4300배의 돈이다. 허기야 가난한 과부의 연보처럼 용할머니의 130만원은 생활의 전부라면 560억 미납자에게는 그 돈이 우스운 껌값인지도 모른다.

법이 원칙이 되기 위해서는 홍천 용할머니의 이야기를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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