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희 계룡수필문학회원

제자리에 없다. 잃어버렸으면 어쩌나. 정말 아끼는 물건이다. 갖고 싶었던 것이기에 친정 부모님께 말씀드려 어렵게 얻은 것이다. 눈에 잘 띄는 큰 물건이 아니라서 더더욱 찾기가 어렵다. 주먹만한 것이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눈앞이 컴컴하다. 난감함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멍하다. 물건이 반란을 일으킬 일은 없고. 대청소하다 필요 없는 물건과 함께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더욱 진땀이 난다. 입이 마른다. 목구멍이 탄다.

찾아야 한다. 온 집안을 뒤집어도 없다. 손끝과 다리에 힘이 빠진다. 부모님의 황당해 하는 얼굴이 떠오른다. 잘 간수하지 못한 날 원망하는 눈빛을 보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친정에 가서 작심하고 말씀드려 얻은 것이다. 그 물건을 달라고 말씀드리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물건이지만, 아버지께서 너무나 아끼는 것이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려웠다.

한쪽 거실 장을 장식한 그것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전에부터 갖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를 엿보며 지금껏 지내온 것이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물건이기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은 연적이다. 앙증맞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크기가 작다. 그것을 어릴 때부터 사용했다. 난 어려서부터 붓글을 썼다. 그러나 서실에 나갈 때엔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었다. 붓글을 쓸 때 필요한 것이 연적인데도 아버지는 집에서만 사용을 허락하셨다.

밖으로 나둘리는 것은 절대로 안 되었다. 구태여 들고 나갈 생각까지는 없었어도 대수롭지 않은 것에 민감하신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서실에서 그 연적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다지 소용되지 않았다. 연적 대신 대용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른들 붓글 쓰듯이 격식을 갖춰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연적이 꼭 필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좋았다. 속도 없는 나는 그것을 아버지 몰래 소꿉놀이 그릇으로 사용했다. 매끈한 것이 손안에 착 달라붙는 것이 좋았다. 그 감촉이 좋아서 자꾸 가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그것을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이셨다. 난 두 눈을 딱 감았다. 어차피 마음먹은 것이니 아버지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임을 강조했다. 지그시 감은 눈을 뜨시더니 마침내 아끼시던 물건을 내어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 얼마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뜨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흰색바탕에 청색의 꽃무늬와 줄무늬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연적.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바닥을 딛고 설 수 있도록 네 귀퉁이에 받침이 있다. 작아서 물이 얼마 들어가지 않지만, 위력은 크다. 한 방울의 물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글귀가 되고,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 연적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한 잠도 못자고 아침 일찍부터 또 찾는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곳을 뒤적인다. 한쪽에 쌓아놓은 짐도 풀었다. 곱게 싸여진 종이를 푼다. 정말 다행이다. 연적은 여기에 있었다.

다시 연적을 손에 쥐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아버지께선 왜 이것을 그리 애지중지하셨을까. 어쩌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정신과 사랑이 있었기에 그러신 것이 아닐까.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물건을 내어주실 때의 표정이 내 앞을 가린다. 이젠 단순한 연적이 아니다.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연적을 가슴에 꼭 안아 본다. 아버지의 체취가 살아난다. 작고 앙증맞은 연적이 나에게 붓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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