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한국과 일본이 가까우면서도 감정의 골이 깊듯 영국과 프랑스 역시 대단한 앙숙이다. 영국의 헨리 8세는 프랑스 왕 프랑소와 1세를 지독하게도 미워했다. 어느 날 헨리8세가 본나라라는 신부를 불러 프랑스 특사로 보내면서 프랑스 왕궁을 위협하는 말을 전하라고 한다.

신부는 “폐하께서 가라고 하면 가겠지만 그 말을 전했다간 제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하자 “만일 프랑스가 경을 죽이면 짐은 프랑스 사람 모두를 죽일 것이요” 했다. 그러자 신부는 “프랑스 사람 모두를 다 죽여도 저의 목에 맞는 머리는 없을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조선 성종 때 문신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 제2권에 조선 세종조 판중추부사이며 한명회(韓明會)의 장인이었던 민대생(閔大生)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나이90이 된 정월 초하룻날 조카들이 찾아와서 신년 인사를 드렸다. 조카 중 하나가 “숙부님, 부디 백년까지 향수(享壽)하십시오” 했더니 민대생이 벌컥 화를 내며 “내 나이 90인데 백년이라면 얼마 살지 못할 것인데 무슨 복 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하며 쫓아내어 버렸다.

눈치 빠른 다른 조카가 “숙부님, 백년사시고 또 백년을 향수 하십시오” 했더니 크게 기뻐하여 잘 먹여서 보냈다고 전한다.

아무리 천당이나 극락이 좋다고 해도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는 것이 인간의 솔직한 심정이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진시황은 오래 살기 위해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온 세상을 다 뒤지게 했으나 끝내는 마흔 아홉의 나이로 죽었다.

그러나 BC 200년대에 그만큼 살았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꽤 오래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추측이 가능한 것은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인도 등 많은 나라의 평균수명이 40세 정도에 머무는 것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에 49세란 장수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번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 세계 사람의 평균수명이 남자 65.8세였고, 여자는 70.2세였다. 세계 최장수국가는 남자의 경우 아이슬란드로 80.4세였고, 여자는 일본으로 86.5세다. 최단명국가는 남여 모두 아프가니스탄으로 44.3세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남자 76.2세로 세계 32위, 여자는 82.8세로 세계 17위다. 북한은 남자 65.3세로 118위, 여자는 69.5세 세계 125위로 세계 평균보다 낮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이 증가하는 속도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에 속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은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세계적으로 장수한 사람들을 조사한 바로는 인간의 수명한계를 120세 정도로 보고 있다. 실제 120세까지 산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150세까지 살수 있다는 수명론이 학자들 사이에 대세를 이루고 있다. DNA 복제기술과 세포연구 발달로 가까운 미래에 생체이식이 보편화할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까지 제시하고 있다.

오래 산다는 것이 성공한 삶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요즘 유행하는 ‘9988 234’처럼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팠다가 죽는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더욱 없다.

오복(五福)이라 함은 오래 사는 것(壽), 넉넉한 물질(富), 건강과 편안함(康寧), 이웃에 베푸는 덕(攸好德) 그리고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考終命)을 말한다. 그 첫째가 오래 사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그 끝 역시 고종명으로 마무리된다.

고종명의 전제조건이 유호덕(攸好德)이다. 덕을 좋아하고 이를 행함을 말한다. 한마디로 선업(善業)을 쌓는 것이 복이고, 곧 죽음에 대한 준비다. 편안하게 오래 살다가 죽는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얼마나 삶을 치열하게 살았는가, 얼마나 베풀며 살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고, 자기 삶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나서 맞이하는 죽음이어야만 고종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화(老化)란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적인 과정이며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필연의 과정이다. 인생이란 왕복기차표를 끊을 수 없는 것이기에 하루하루가 바로 자기의 역사이며 발자취다. 그러기 때문에 ‘잘 사는 일’만큼이나 ‘잘 죽는 일’ 또한 그 비중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삶의 ‘Do best’란 오래 살면서 유호덕을 실천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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