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초년병 시절. 타지에서 지역선배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다 흥이 오르면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시작은 달랐지만 마지막은 늘 한결같았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광야에서’가 끝 곡이었다.

이 노래의 가사 한 부분을 개사해서 불렀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부분을 ‘뜨거운 거제’에서로 바꿔 목청껏 외쳤다. 그 순간만은 선후배 모두가 거제사람이라는 공통분모 안에 녹아들었다.

부산 사람들에게는 ‘부산 갈매기’가, 광주·전남 사람들에게는 ‘목포의 눈물’이, 인천 사람들에게는 ‘연안부두’가 그 지역의 상징적인 노래로 애창되고 있다.

우리지역에도 ‘거제의 노래’가 있다. 무원(蕪園) 김기호 선생이 내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만든 곡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거제의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초·중·고생들 또한 극소수다. 

2008년 1월, ‘거제의 노래’ 노랫말과 악보가 새롭게 정립된 뒤 거제시와 거제교육청은 ‘거제의 노래’를 보급하고 홍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행정과 교육당국의 계획은 헛된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에서는 ‘거제의 노래’를 CD로 제작해 학교를 비롯한 각급 기관단체에 나눠주는 일로 홍보를 다했다는 입장이다. 교육청도 시의 협조공문이나 협의사항이 없어 보급에 나서지 않았다는 식의 견해를 보였다.

‘거제의 노래’에 대한 지역언론의 지적에 형식적인 제스처만 취한 것이다. 마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라는 듯이.

이 노래의 보급이 그렇게 어려울까? 직장과 학교 등지에서 매일 한번씩 ‘거제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1년 동안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듣다보면 입으로 가락을 흥얼거리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또 각종 행사에서 ‘거제의 노래’를 합창하는 순서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거제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학생들과 22만 거제시민의 입에서 ‘거제의 노래’가 불려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 기자만의 헛된 기대일까?

뱀 다리 하나, 시에서는 큰 행사진행시 의전이 정해져 있어 ‘거제의 노래’를 부르기가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전에 살고 격식에 죽는’ 외교관도 자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파격도 불사한다고 한다.

18세기 말 영국의 메카트니 사절단이 청나라 황제에게 복종을 의미하는 고두(叩頭·경의를 나타내려 머리를 조아리는 것)를 행하지 않은 것이나, 초대 주미공사인 박정양이 상투와 도포 차림으로 미국 대통령을 면담했던 일이 그것이다.

거제를 찾은 외부인사들에게 ‘거제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되묻고 싶다.

뱀 다리 둘, 거제교육청은 거제의 노래 보급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전임 교육장이 한 약속은 새로운 교육장의 부임과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우리지역 출신으로 ‘거제의 노래’ 보급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한 전임 교육장의 태도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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