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거제수필문학회원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다. 이런 날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까.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지낼까. 아님 공허한 냉기가 쏟아지는 하늘 덕분에 쓰린 기억 하나 드러내며 보낼까.

아는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결혼하기 전 동생은 친정 부모 모시느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는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병수발까지 도맡아 하면서 남편과 시부모님 모시기에 여념이 없더니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는 외롭단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녔다.

동생의 처신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 특히 결혼한 남자들은 그 동생의 가족에 대한 헌신을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고, 그러는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어떨 땐 모든 걸 달관한 사람인 양 행동하기도 했으니까.

어른들께 잘하는 것이야 무슨 문제 일까마는 자신의 인생을 몽땅 저당 잡힌 게 문제면 문제였다. 몇년 전부터 ‘집 안에 개를 키운다. 입양을 해야겠다. 갑자기 누구 집 가게를 봐주게 됐다.’ 며 나름대로는 무척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게 모두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거였나 보다.

이십여 년을 집안 살림만 하다 취직을 한다고 해도 뭐 그리 즐거웠을까 싶기도 하고, 몽골을 다녀오고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며 너무나 편안했다고 했었는데. 이미 그때에도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이 그 동생의 삶을 견뎌낼 수 없을 만큼 힘들게 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한다. 아마도 자신을 잊어버린 세월이 아니었을까. 얼마전 〈엄마가 뿔났다〉란 연속극을 보면서 일 년간의 휴가기간을 받아 집을 나가 살면서 너무나 행복해 하던 극중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그 자체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사고라고 한다.

하지만 가정주부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 자리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이기적인가.

살면서 누구나 휴식기간이 필요하다. 한곳에 머물러 있기만 하다면 자신에 대한 무가치와 무기력감이 찾아올 테고 그럴 때 자신을 찾으려고 하면 이미 늦었다는 자책감과 허무감이 몰려들 수도 있지 않을까.

다행히 그 드라마 속 엄마는 책도 읽고, 요가도 하고, 붓글씨도 배우고, 새로운 것을 많이 시도해서 좋아보였지만 현실이 그렇게 해주지 못한 상황에서 마음속 갈등만 일으키는 사람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깜깜한 절벽으로 내딛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으면서도 외롭단 한마디 말로만 표현했던 동생에게 아무 조언도 해주지 못했던 나 자신이 못내 한심스러워진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허전하다고 생각하면 허전하게 느껴지고 마음속이 늘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게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한때는 나도 그런 비관적 사고가 멋있단 생각을 하며 살았다.

사람은 적당히 외로워야 하고 가을이 오면 고독감을 맛보아야 하며, 별거 아닌 것도 깊게 생각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외치며 지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지난 일을 가끔씩 되새김해 보면 그건 에너지만 소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에 나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고 더 나아가 세상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다면 현재의 나보다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거…, 그건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되새겨봐야 할 것이리라.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아들, 딸이 아닌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대견해 하며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처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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