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바다 애무하며 삶·꿈·희망 이어 온 어엿한 전문직업인

거제해녀 역사 100년, 꿋꿋이 살아온 그녀들의 저력, 어머니의 무한 희생 보는 듯
바다속 누구보다 잘 아는 거제바다 전문가 나잠회 결성 통해 목소리 내기 시작

때론 거친 바다와 마주서야 한다. 2-3m 파도를 타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또 쉼없이 바다 위 아래를 오르내려야 한다. 귀가 터질듯 조여들고 숨이 멈출듯 가슴이 압박된다.

바다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휴-하는 긴 생명의 소리를 내뱉는다. 2-3분 간격의 고요함과 휴- 하는 생명의 소리가 반복되며 그녀들이 들고 들어간 서 너 개의 망사리가 점점 채워져 간다.

소위 프로들이지만 때론 생명의 위협도 느낀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그녀들의 직업이고 생활이기 때문이다.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부모님을 모시는 경제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꿋꿋이 지나온 세월들이 100년이 넘어간다. 83세 된 능포동 거주 한 할머니는 ‘바다 여자’로서의 삶을 아직 이어가고 있다.

“평생을 해 온 물질이다. 살아있는 동안,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바다로 나갈 것이다. 거친 바다에 맨 몸으로 맞서 애무하듯 바다 속을 헤맸다. 그래서 자식 교육시키고 먹고 살아왔다. 바다 속은 우리 해녀들의 삶이요, 꿈이요, 희망이다”는 것이다.

거제해녀는 제주 해녀의 ‘원정 물질’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1900년대 초 제주 외의 작업 대상지를 찾던 제주 해녀들이 거제로 원정 와 한 달 두 달 머무르며 해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선 보였다는 것.

이후 제주 해녀들은 한 두 명씩, 때로는 가족, 집단을 이뤄 거제로 넘어와 남부면, 일운면 장승포 등지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지역사회의 한 축을 이루며 ‘특수전문직업인’으로서의 사회적 궤적을 그려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일 오전 10시 취재팀은 사등면 청포마을 선착장에서 8명의 해녀들과 함께 해녀 작업선에 올랐다. 4톤이 조금 넘는 작업선이 이날 작업지인 통영시 광도면 인근 연안으로 이동하는 동안 8명의 ‘바다여자’들은 작업선 앞 쪽에 마련된 1.5평 크기의 조그맣고 나지막한 칸막이에서 해녀복을 갈아입고, 납을 두르고, 수경을 쓰고, 오리발을 신는 등 작업준비에 열중했다.

이곳 좁은 공간에는 추위를 녹일 벽걸이용 가스난로 몇 개와 몸을 씻을 물을 데우는 철제 물통, 앉을 수 있는 받침의자 등이 산만하게 다닥다닥 흩어져 있었다. 해녀들은 배 위 마련된 이 좁은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고 추위를 녹인다는 것이다.

“해녀복을 갈아입고 몸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할 변변한 장소조차 없는게 거제 해녀들의 현실이다”는 자조들이 중간중간 섞여 나왔다.

장비를 다 갖춘 해녀들의 작업차림은 신기하고 생소하기까지 했다. 바람이 세지면서 파도가 다소 일었다. 춥기까지 했다. 이곳은 해삼이 주 채취 대상이라 했다. 이동하는 작업선에서 장비를 갖춘 ‘바다여자’들이 한 명씩 뛰어내렸다.

거침이 없었다. 노련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2㎞ 가량의 바다를 이동하며 해녀들을 다 비운 작업선은 인근 선착장에 배룰 묶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작업선에 시동이 걸렸다. 중간 상황 점검을 나간다는 것이다. 함께 작업선에 탄 김애영 나잠회장이 먼저 배에 올랐다. 가지고 들어간 3개의 망사리가 민망할 정도로 가벼워 보였다.

“한 번 바다에 들어가면 5-6시간 작업을 한 후 배에 오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물건’이 없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할 것 같아 올라왔다”며 “바다속도 예전같지 않다. 당연히 우리들의 벌이도 변변챦다. 그러나 우리의 직업이니 만큼 하루도 거를 수가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망사리에는 조그만 해삼 200여 마리와 가리비 조개 10여개, 파래 등이 각기 나뉘어 담겨 있었다.

작업선이 이동하며 다른 해녀들의 작업 상황을 묻곤 했다. 이들 ‘바다여자’들은 바다속 ‘물건’을 찾아 연신 고개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바다 위를 애무하듯 누비고 다녔다.

오후 1시30분.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바다여자’들의 작업은 멈출줄 모른다. 5-6시간 작업이 다 끝나야 배에 올라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배가 무척 고플텐데… 이력이 나서 그러나… .”

거제에는 16척의 해녀 작업선이 운영되고 있다. 200여명의 거제해녀들은 이 작업선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셈이다. 해녀들이 작업해 잡아 온 물건들은 그날 바로 저울에 달아 양을 확인하고 작업선 선주와 해녀들이 반반씩 나누게 된다.

오후 들어 바람이 더욱 세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파도를 즐기듯 유유히 나아가고, 사라지고,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휴-하는 긴 호흡소리가 파도소리에 뒤섞여 연신 들렸다. 

거제나잠회 김애영 회장은 “제주에서 넘어와 거제에서 해녀로 살아온지 30년 정도 됐다. 해녀 대부분이 제주도 출신이지만 10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모두가 거제사람이 됐다.

200여명의 거제 해녀들이 오늘도 거친 거제 바다 곳곳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힘든 일이지만 보람과 지부심도 있다”고 말하는 김 회장은 특히 “잠수병, 열악한 작업환경 등으로 거제해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이 많은 만큼 거제시가 거제해녀들의 이같은 복지문제 해결에 관심을 좀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바다가 상품이 되는 거제, 그 거제바다 속을 누비며 100년의 역사를 잇고 삶과 희망을 꿋꿋이 개척해 온 거제 해녀, 그대들의 역사와 삶은 절대 당당해야 하리라”는 취재팀의 바람을 전해주고 싶었다.

   
“해녀복지관 건립 좀…”

3년전 ‘당당한 전문직업인’을 선언하며 사단법인 거제 나잠회가 조직됐다. 김애영씨(53·연초면 거주)가 초대회장을 맡았고 현재 연임하고 있다.

“특수전문직업인으로서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확인하면서 나아가 세계 3개국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해녀의 인간문화재 추진과 나잠기술 개발, 해녀들의 복지문제 해결, 연근해 관리 및 수산자원 보호와 정화에까지 우리의 역할을 찾아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 함이 취지다”는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지금 현재 거제에는 200여명이 넘는 해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해녀의 본고장 제주도는 곳곳에 해녀 탈의장, 복지관이 자리하고 있고 해녀를 테마로 한 박물관까지 들어서 관광상품으로까지 기능하고 있기도 하다.

김 회장은 “제주 다음으로 해녀가 많은 곳이 이 곳 거제다. 역사도 깊다.  제주와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 거제해녀들은 바다를 터전하고 있는 거제사회 역사의 한 축을 형성해왔다고 볼 수 있다.

복지관, 탈의장 등을 마련, 우리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안아주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한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관광 테마의 ‘꺼리’로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회장 등 거제나잠회는 해녀복지관의 건립을 위해 거제시, 해양수산부, 동해어업지도사무소 등의 문을 두드리며 끈질긴 노력을 해 오고 있다. 그러나 거제시 등은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김 회장은 “거제 곳곳에 있는 해녀들이 탈의장 하나 없어 불편을 겪고 있고 변변한 휴식공간 하나 없는 열악한 작업환경에 놓여 있다. 잠수병 등에 따르는 만성 두통도 호소하고 있어 고통과 병원비도 만만찮다. 지자체가 조그만 관심만 보여준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거제나잠회는 3층 규모의 해녀복지관 건립을 일정부분 자부담을 조건으로 해 시에 요구하고 있다. 주차시설, 해녀들이 직접 잡아 판매하는 해산물 코너, 찜질방, 감압치료 시설 등이 갖춰진 복지관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해녀를 테마로 한 관광상품 “어머! 괜찮다~아”

거제나잠회의 해녀복지관 건립요구 움직임과 관련, 이와 더불어 이참에 거제해녀를 테마로 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부족한 관광거제의 내용 보다 풍부하게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제주도의 사례를 참고하되 거제의 특성을 반영해 내는 해녀관련 상품을 개발한다면 이또한 볼거리, 먹거리 관광코스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 한 관계자는 “거제해녀의 역사를 조명하는 것, 해녀의 장비,  그녀들의 애환 및 삶의 방식 재현,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판매하는 규모 있는 먹거리 센터 조성 등 제주와 차별되는 관광상품화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지세포 어촌민속전시관에 해녀 관련 테마가 있는데 잘못된 것이 많고 관광객들의 눈길을 붙잡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인것 같더라”며 “정확한 조명과 재현을 통해 100년 역사의 거제해녀를 특색있게 관광상품화 할 가치는 충분히 있을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