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날, 봄비가 내린다. 온 대지는 촉촉이 젖고 나뭇가지는 푸른빛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시작이구나’ 하며 창밖을 내다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다. 얼마 만인가! 벌써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웬일이냐는 물음에 “저녁 준비하면서 나물 무치다가 너 생각이 나서…, 이렇게 흐린 날이면 늘 우리들의 옛날이 그리워진다.”고 덧붙인다. ‘내가 그런 친구였나?’ 챙겨주기보다 늘 받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그해에 나는 무척 힘든 나날을 보냈다.

가뜩이나 여린 성격에 온갖 절망은 다 껴안은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흐린 날이면 친구를 붙들고 해운대 바닷가에 가자고 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하루를 훌쩍 넘기기가 일쑤였으니, 이런 날에 내가 생각난다는 친구의 말도 거짓은 아닐 것이리라 싶다.

젊은 날, 누구나 한번쯤 절망감은 느껴보았으리라. 나 역시 그때 세상에 대한 반항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았나보다. 힘든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하여 난 모든 것에 손을 놓고 수일을 외출도 안하고 방에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비스듬히 기운 자취방에서 바라보던 파란 가을하늘은 다른 때보다 더 찬연하고 파랗게 보였다. 종일 빈둥대며 누워 있는 나를 옥상에서 가만히 내려다보시던 앞집 아주머니가 작은 창문으로 내밀어주던 노란 국화묶음. 그 향이 위로가 되던 그날, 그 친구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햇빛도 거부하고, 먹는 것도 시원찮아서인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나를 끌다시피 하여 바닷가로 데려갔다. 바다는 변함없이 포근했고 은빛 햇살을 일렁이며 수많은 말들을 나에게 해주는 듯했다. 파란 하늘과 은빛 바다, 그리고 모래해변.

그 다음 날, 그 친구는 마치 친정엄마라도 된 듯이 온갖 종류의 곡식과 양념을 봉지 봉지 담아서 나를 또 찾아왔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였던지 가기 싫다는 내 손을 잡아끌며 기어코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었다. 이제부터 나랑 같이 지내자며, 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북받쳐 온다.

일년 넘게 단짝으로 지내오면서도 처음 방문한 친구의 집, 친구의 아버님께서는 전쟁 중에 한쪽 다리를 잃어 불편하셨다. 그럼에도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맞아주셨다.

아버님께서는 ‘우리 란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영미야,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자.’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는 또 얼마나 따뜻하게 날 챙겨주셨던지. 낯을 많이 가리는 나의 성격을 아는 배려였을 것이다.

난 그 집에서 여러 날을 모른 척하며 편안하게 보내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얻고서야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꼭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으면서.

나는 누구에게 그런 친절을 베푼 적이 있었던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환한 미소를 머금고 인정스레 날 대해주시던 그분들을 힘들 때마다 가슴에서 꺼내본다. 그분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 시간이 부족하단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함을 미안해 하며 보낸 지도 십여 년이 지났다.

중년의 나이에 오랜 세월을 얼굴 마주하지 않고도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는 것은 나의 아픔을 함께했기 때문이리라.

수선화 같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이 없던 그 친구, 때론 너무 조용해서 날 심심하게도 했던 그 넉넉한 친구가 있어 질척거리는 봄날에도 난 여전히 씩씩한 모습으로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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