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내 계룡수필문학회원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약수터를 찾는다.

그렇다고 물을 길어 오기 위해 다니는 건 아니다. 지나며 몇 모금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산길을 오르다보면 입이 말라 목을 축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다. 그것도 일급수의 약수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약수터 길이 예전엔 오솔길이었다.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었다.

겨울 방학이 되면 이 길을 따라 친구들과 땔감나무를 주우러 다녔다. 나무를 머리에 이고 좁은 산길을 줄지어 내려오던 기억이 영상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땐 지금 약수터처럼 단장돼 있지 않았다. 길섶의 조그만 샘물이었다. 바가지가 따로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릇 대신으로 두 손을 모아 꿀꺽꿀꺽 목을 적셨다.

땔감을 줍느라 진종일 땀을 흘렸고, 또 배도 고팠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 약수터가 지금은 잘 단장되어 있다. 자연석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주위로 털머위를 심었다.

꽃대를 곧게 세운 털머위가 노란 꽃망울을 열어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는다. 약수터의 물을 빨아들여서인지 털머위의 넓고 푸른 잎은 자르르 윤기가 흐른다.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주위에 빼곡히 들어차 있어 땀 흘린 길손들의 더위를 식혀줄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편안히 쉬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약수터다.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물을 길어간다. 가뭄이 오래 가도 웬만해서는 물의 양이 줄지 않는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흘러내린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먼 곳에 사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는다.

물을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계속 들러 물을 길어가기도 하고, 또한 이곳 절경을 즐기기도 한다. 물을 바가지에 받아 양껏 마신다. 청량음료보다 더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이다. 목 아래까지 시원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정말 상쾌하다. 이 맛에 모두들 약수터를 찾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물을 받지 않을 때는 그냥 흘러 나간다. 일급수의 약수가 흘러가는 걸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물을 끓여 먹거나 아예 생수를 사 먹는다 하던데. 흘러 나가는 이 물을 모아 그 사람들에게 보내 유익하게 썼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이 약수터는 말 그대로 약물이 나오는 곳이다. 언제든지 깨끗한 물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마실 수 있다.

그런데 가끔씩 비닐이나 담배꽁초 등 행인들이 버린 쓰레기가 널려 있다. 또 물을 받아먹기 위해 걸어둔 바가지도 간혹 없어진다. 그럴 땐 기분이 상한다. 그게 끝이었다. 내가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만으로 그걸 치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행히 누군가 쓰레기를 치우고 새 바가지를 걸어 두기도 한다. 한 사람의 수고로움으로 여러 사람의 불편이 해소된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없어졌다고 한번이라도 새 바가지를 가져와 걸어두는 배려가 있었던가.  여기저기 흩어진 쓰레기를 치울 생각을 했던가. 생각은 하면서도 누군가 하겠지, 하며 실행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못한 나 자신이 오늘 따라 부끄러워진다. 나 자신에게 이른다.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일을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행하라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어디에선가 본 글귀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고 간 자리도 아름답다. 우리 모두가 자연 앞에 부끄럽지 않는 모습이기를 나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주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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