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황제의 길'이 있다는 사실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가 보도했다. 그러나 문화일보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문화일보는 오지도 않은 에티오피아 황제가 거제를 다녀간 것처럼 즉 거제시가 '뻥'을 쳐 황제의 길을 만들었다고 결론적으로 보도했다. 거제시가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개 창피가 어디 있는가? 나아가 문화일보는
지금 우리는 21세기 그 풍성함 속에서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아낌없이 누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세상에서는 가난과 결핍의 아우성이다.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에 빠져간다. 한편에서는 오히려 풍요가 삶을 멍들게 하고 절망에 빠지게 한다. 양극화의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같다. 양쪽의 끝이 너무 멀다. 그래서 서로를 모른다. 잘 알려고
신문이나 잡지를 보다가 ‘숨은 그림 찾기’ 난을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연필을 잡는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그림들이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떤 그림은 예상했던 곳에서 쉽게 찾기도 하고, 또 어떤 그림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어 급기야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오기로 숨은 그림을 찾을 때도 있다. 때로는
벌써 이 곳에 둥지를 튼 지도 다섯 해가 된다. 오십여년 동안의 도시생활을 접고 남편을 따라 내려왔다. 이 곳은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여 별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 자녀를 출가시키고, 남은 공직생활을 섬인 이 곳에서 마무리하며 전원생활을 꾸리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은 각오만으로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런
이삿짐을 실은 차는 떠나고, 허전한 기운만이 남아 있다. 텅 빈 골목길 전봇대 아래 항아리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침저녁 지나면서 인사하듯 바라본다. 시간 여유가 있는 날에는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 본다. 이런 저런 사연을 물어보듯 관찰한다. 비를 맞기도 하고, 스스로 몸을 말리며 쓰러져 누워 있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 집에는 놓을 자리가
“난 이 곳이 싫어.” “왜?” “시시해. 늘 똑같은 얼굴들, 변하지 않은 풍경들이 지겨워.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싶어. 화려한 것이 아주 많은 곳에 딱 하루만이라도 살아봤으면 좋겠어.”태어나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농원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나른한 오후다. 햇볕에 수면제를 탔는지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그때 아저씨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저씨는
팔을 살짝 걸쳐본다. 가만히 있다. 다른 때 같았다면 얼른 뿌리치고 한 걸음 앞서 갔을 터인데, 흥겨워하는 내 기분을 간파했을까.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예 맡겨버린다. 무언의 허락을 얻었으니 팔짱을 꼈다 손깍지를 꼈다하며 숫제 내 마음대로다. 모처럼 마음먹고 데이트를 즐기려 한다. 먼저 저녁부터 해결하고자 원하는 음식을 권해보는데, 냉면집을 가리킨다. 그는
모임이 많아질수록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일이 는다. 처음엔 언제 오느냐 성화를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엄마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느 새 제 할 일 알아서 할 줄 알고 문단속까지 하고 잔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평소와 다름없다. 왜 늦었는지 묻거나 타박도 없다. 어릴 적에 엄마가 모임에 나가 늦을 때면 동생과 둘이 놀다가 잠이 들곤 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
기어코 일이 났다. 몇 주를 성난 맹수마냥 으르렁거리더니 울다 지쳐 돌이 된 듯 멈춰버린 것이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 신혼 살림살이로 장만한 세탁기, 우리 집 빨래를 도맡아한 지 십 년이다. 남편의 작업복 주머니에 숨어 있던 작은 나사못, 볼트, 너트가 세탁기의 몸 속 구석구석 생채기를 내었고, 가리지 않고 돌렸던 옷들은 목구멍에 해묵은 찌
“엊저녁에 보름달 보았니? 참, 밝더구나.”요즘 들어 어머니는 전화를 자주 하신다. 지난밤 창문에 걸려 있는 둥근 달을 보고 세월속에 덮어 놓았던 옛 기억을 회상하신 것 같다. 가슴에 고이 담아 놓았던 그리움이 초가을 소슬 바람과 함께 깨어나고, 애써 묻어둔 회한들이 달빛과 함께 되살아나는가 보다.보름달이 떠오르면 나는 어머니의 애간장을 끓게 하는 아이였다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 전깃줄에 앉는다. 고개를 내두르며 꾸루꾸루 울더니 날아가 버린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비둘기가 시멘트로 포장된 길 위로 내려앉더니 부산하게 오간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먹이를 구하기가 영 불안한가 보다. 부리로 이곳저곳을 찍기도 하고 뒤뚱거리며 내달리기도 한다. 산에 사는 비둘기가 인가로 내려와 먹이를 찾는 것을 보니 산속의 먹
선산에 갔다. 긴 여름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풀은 자랄대로 자랐다. 여기저기 마음껏 자란 풀들은 사람 앉은키를 넘본다. 멀쑥하게 자란 쑥이며 고사리에 가린 봉분들은 비석이 없다면 어느 조상의 묘인지 구분조차 어렵다. 키 큰 풀들을 한 움큼씩 힘껏 뽑아본다. 뿌리와 같이 누런 흙이 딸려 나온다. 흠뻑 패인 자리가 휑하다. 마른 흙들이 블랙홀로 빨려들듯이
(남편을 따라 나선다. 남편의 군대동기생들 모임이라 혼자서 갔는데, 이번에는 부인들도 같이 자리를 하게 되어 모처럼 부부동반 외출이다. (오랜만에 여객선을 타본다.) 원래는 네 시 배를 탈 예정이었으나 앞당겨 두 시배를 탔다. 바람이 센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풍랑 주의보가 내릴 것 같아 서둘렀다. 만약 배를 못 타게 된다면 버스로 한참 둘러가야 하니 약속시
호텔이 밀집해 있는 거리에 어김없이 야시장이 선다. 더위가 사그라지는 저녁나절이라 운동 겸 나들이 삼아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까지 모여든다. 이곳은 중국의 열대도시 징홍이다.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 국경이 인접해 있어 이웃나라로 이동하려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치는 코스다. 소일삼아 민예품을 구경하고 있는데 대여섯 살쯤 되 보이는 사내아이가 내 바짓가랑이
왼손은 오른손이 부럽기만 해. 같이 태어났건만 늘 양지(陽地)니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오른손이 얼른 악수를 청하지. 어차피 왼손은 나서려는 생각도 없는데 말이야. 간혹 분에 넘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마지못해 왼손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 그럴 때마다 얄미워 도와주고 싶지 않아. 하기 싫은 일은 왼손에게 미루고 좋은 일은 혼자 다 하려는 오른손 때문에 한
고추잠자리가 비행한다. 저녁 무렵, 한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가 하늘을 휘젓고 다닌다. 여름이 가는 길목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고추잠자리 떼. 한참을 놀다가 지치면 나뭇가지에도, 빨랫줄에도 앉아 쉬기도 한다.언제나 빨랫줄은 넉넉한 마음이다. 누가 찾아오든 마다하지 않고 받아준다. 참새들도 찾아와 담소하며 즐긴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찾아와
집을 짓고 이사했다. 뜰에는 잔디를 심고, 조경의 기틀은 종려나무에게 맡기어 이국정취를 풍기게 했다. 그 틈새로 여기저기 과실수를 꽂고 여유를 즐긴다. 전에부터 생각한 고향의 진달래와 할미꽃도 구해 심고 나니 감회가 남다르다. 고향에서 캐어온 것들에는 그곳의 흙이 붙어 있어 그냥 진달래와 할미꽃이 아니다. 내 고향 흙을 끌어안고 있으니 단순히 식물로 멈추질
흰 거품이 청록 색 바닷물 속으로 녹아들며 빛을 발한다. 그 반사 빛 사이로 얼핏 설핏 모습을 드러내는 찌는 흐르는 조류를 타고 미끄러지듯 수면 위를 노닌다. 깐죽깐죽 찌가 멈칫하면서 스르르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머리끝까지 긴장한다. 재빠른 챔질로 짜릿한 쾌감을 손끝으로 느껴진다. 사정없이 쳐 박는 놈을 제압하고자 대를 세우고 콩닥콩닥하는 가슴을 진정시
여름이 무르익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소나기가 많다. 그러다 뜨거운 햇살이 비추면 그 열정적인 열기에 자연은 더욱 더 푸르러진 느낌이다. 이때쯤이면 사람들은 휴가를 떠난다. 열심히 일했으므로 무더운 때에 베짱이처럼 쉬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여행을 떠나는 이도 많다. 그래서 여름 휴양지는 몸살을 앓는다. 이번 여름철에도 휴양지인 이곳 거제도는 몸살을 앓고
내 집 거실은 전통찻집이라 불리기도 하고, 또 민속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차를 즐기는 남편 덕에 차구가 제법 있고, 너절한 옛것들이 더러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갤러리라 한다. 크기가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스무 점이 넘게 걸려 있고, 돌이나 구리 나무에 새긴 조각품이며, 서예 수예 공예품들이 적잖이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굵은 대나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