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계룡수필 회원

호텔이 밀집해 있는 거리에 어김없이 야시장이 선다. 더위가 사그라지는 저녁나절이라 운동 겸 나들이 삼아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까지 모여든다.

이곳은 중국의 열대도시 징홍이다.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 국경이 인접해 있어 이웃나라로 이동하려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치는 코스다. 소일삼아 민예품을 구경하고 있는데 대여섯 살쯤 되 보이는 사내아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린다.

십 여일 이곳에 드나들면서 가끔 마주친 녀석이다. 엄마한테 가라고 타일러도 막무가내다. 착 달라붙어 살갑게 구니 내치기가 어렵다. 볼수록 귀염성도 있으나 땟국이 줄줄 흐른다. 행색도 남루한 게 장마당에 떠도는 아이 같다.

손수건에 생수를 묻혀 닦아주었다. 손과 얼굴이 깨끗해져 인물이 한결 돋보인다. 먹을 것에만 눈독을 들이는 꼴이 안쓰럽다. 배가 고팠던지 바나나를 건네니 덥석 받아 게걸스럽게 먹는다.

손자 놈이듯 만두랑 과자랑 잔뜩 안겨주고 손잡고 다니는데 안색이 심상치 않은 젊은 여인이 고함치며 다가온다. 아이를 거칠게 낚아챈다. 의붓어미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나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미안하단 말을 여러 번 했으나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다급한 아이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급기야 여인은 아이를 사정없이 때리며 나와 떼어 논다. 장꾼들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고는 아이를 질질 끌고 피해간다.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앞뒤 정황을 따져볼 여유가 없다. 겸연쩍고 무안해서 도망치듯 숙소로 뛰어 들었다. 세상과의 절연을 결심한 양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뒤집어쓴다. 깜깜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들었다. 어둠뿐이니 안심이 된다. 외부로부터 나를 차단시켜 보호막이 되 준다. 위안소다. 따듯하고 포근하게 감싸준다.

무조건 내편이 되 주는 이불속은 피부치보다 더 살갑다. 가만히 들어보니 내 숨소리만 정적을 깨고 있다. 거친 숨이 잦아들고 수치심도 야속함도 누그러지며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제 겨우 정신이 난다. 저질러진 일을 어찌 해석해야 하는지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서툰 참여가 문제다. 참견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어설픈 감상이 화도 부른다.  측은지심의 발동이 자주 일을 내고 말썽을 일으킨다.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여 치이고 영문도 모른 채 상처받기 일쑤다. 매사에 초연해 보자고 다짐 해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세상과의 소통이 서툴다고 아예 담을 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지났을까. 갑갑하고 따분해서 더는 견디기 어렵다. 숨도 막힌다. 이불 밖 소리에 귀를 세운다. 시계초침이 바쁘게 발걸음 질 친다. 슬며시 얼굴을 내 놓는다. 방안의 구도가 서서히 눈에 잡히고 작은 방에서조차 무심할 수 없어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끌려간 아이가 떠오르며 안절부절 초조해진다.

어릴 적 숨바꼭질 할 때도 그랬다. 대소쿠리든 포대자루든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일단 숨는다. 처음엔 눈에 띄지 않으려 고심하다 홀로 있는 아늑함에 취해 놀이자체를 잊어버린다.

그러나 외로움을 즐기는 시간은 잠시다. 이내 불안해진다. 얼마가 지나 술래가 나를 찾는 기미가 없으면 안달이 난다. 혼자만 버려진 듯 서러워져 마침내 항복하고 나와 버린다. 
팔도 이불 밖으로 내 놓는다. 길게 뻗어 상관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 베개도 만져보고 침대 시트도 바르게 편다.

발로 이불을 차버린다. 언제 네 속에서 편안했더냐, 마음이 바뀐다. 숨통이 트인 듯 시원하다. 이불자락으로 배만을 칭칭 감고 있다가 그마저도 참을 수 없어 박차버린다.

하지만 얼마나 견딜까. 세상사에 또 부딪쳐서 마음을 다치고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쓸 것이다. 위로받지 않고 살아 갈 자신이 없어 마련한 자구책이 아니던가. 이는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차버렸다 뒤집어썼다 이 짓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아니 일상이 된다 해도 야속해 하지 않고 품을 열어 나를 숨겨주고 다독여 주겠지.

그 속에서 실컷 눈물을 쏟아내고 고함도 내 지르면 가슴이 후련해 질것이고 안정을 찾을 것이다. 차라리 거기서 안주하고 싶을 때도 많다.

더러는 상상의 세계도 펼치고 헛된 꿈도 꾸어 볼 수 있게 할 테고. 눈을 감고 침잠해 들어가면 동굴 속인 양 편안하고 아늑하다. 언제나 곁에 두고 있는 고향이고 어머니의 자궁 속 같으니까.

부끄러운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고 안에 드는 절차가 간편하니 더욱 좋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절로 가라앉고 경비가 드는 일도 아니니 나를 추스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불은 감정의 찌꺼기는 다 받아 삼키고 온기만을 내준다. 뒤집어쓸 때마다 한결같은 이야기만 들려준다. 화해와 타협의 방법을 익히라고.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 단순한 거 하나를 몸으로 터득하는 데 평생 걸린다는 것을. 그래도 마음이 시려오면 언제고 이불을 뒤집어쓰리라. 눈 감고 웅크리고 있다 보면 따듯해질 것이다. 두렵지만 세상에 다시 나갈 용기와 지혜를 내어 줄 테니까.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