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계룡수필 회원

벌써 이 곳에 둥지를 튼 지도 다섯 해가 된다.

오십여년 동안의 도시생활을 접고 남편을 따라 내려왔다. 이 곳은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여 별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 자녀를 출가시키고, 남은 공직생활을 섬인 이 곳에서 마무리하며 전원생활을 꾸리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은 각오만으로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런 계획을 세우고 주위에 말하자 친구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심난함을 더 키웠다.

“한 일 년만 살다가 올라와라.”

사실 그 말에 웃어넘기기는 했어도 걱정은 늘어났다. 도시생활만 해 온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살다가 다시 올라간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한 번 내려가면 그 곳에서 남은 생을 마무리해야 할 판이다. 친구들의 회귀의 말은 내가 참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단정에 가까운 결론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한 일 년 기다리다 오지 않거든 니들이 오렴.”

불안함을 숨기고 그래도 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하는 욕심이 진작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자연과 뒤엉켜 살아보겠다던 우리 부부의 바람이 있었기에 과감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래서 주위에서의 만류와 걱정을 뒤로 밀치고 정든 사람과의 이별도 감내할 수 있었다.

이 일에 대한 만류는 서울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시골에 내려오자 이 곳의 사람들 역시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왜 그 편안한 도시의 삶을 버리고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나무람이다.

거기다가 인가와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집을 짓고 숲속의 생활을 시작했으니, 그들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 깊은 산속에 외딴집을 짓고 누구의 눈치를 볼 일이 없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어 좋았다.

마치 이국땅에서 사는 홀가분함이 밀려와 자유를 만끽하고 살 수 있었다. 답답하게 우리를 가두던 빌딩의 숲이 없어지고, 온갖 새들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숲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불러 주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바라본다.

‘그래, 저게 자유야. 왜 여태까지 그걸 모르고 살았지…….’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말도 걸어보나 아직은 깊이 새길 처지가 아닌 모양이다. 못 미더운지 저만치 달아난다. 좀 더 도시의 냄새를 내 몸에서 걸러내야 친구해 줄 모양이다.

숲에서 나오는 쾌적한 공기로, 이기로 찌든 내 몸을 헹구어낸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소리로 내 더럽혀진 귀를 씻어낸다. 골짝을 흐르는 개울물소리가 산새소리와 화합을 하고, 지세포만을 차고 올라온 바닷바람이 솔바람과 어우러진다.

우리는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해갔다. 모두가 신기하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하루하루 새 날을 맞게 했다. 우선적으로 친환경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입에 들어가는 채소를 내 손으로 가꾸고, 물도 골짜기에서 취하여 생명수로 마실 수 있었다.

텃밭을 일구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재미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처음 텃밭을 일구면서 온몸에 통증이 밀려올 때는 견디기 힘들었어도 그들의 정직함에 더 애정이 갔다.

땅은 노력한 만큼 되돌려 주었다. 어설픈 내 솜씨에도 열매를 맺어 수확의 기쁨을 안겨준다. 그 기쁨이 환희가 되어 가슴으로 차오른다.

땅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많은 영양을 가지고 작물을 키운다. 작물들은 그 영양을 먹고 아기가 자라듯 무럭무럭 자란다. 지폐 몇 장으로 슈퍼에서 구입하여 먹던 채소와는 사뭇 다르다. 내 손으로 키워보니 그 채소들도 나름의 생이 있음에 절감한다. 무심히 취하여 입에 넣던 지난날의 채소와는 다르게 생명 있는 존재로 내게 다가온다.

잘못된 생명같이 모양이 일그러진 기형의 열매를 따다 보면 애처로운 감정이 솟기도 한다. 작은 씨앗을 몇 개 심었을 뿐인데도 몇 배의 수확을 안겨 주는 자연. 이기로 아귀다툼하는 인간들은 이 하찮은 식물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렇게 순수한 자연을 파괴시키고 오염시켜 피해를 주고 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 아닌가 싶다.

산속에 들어와 자연의 혜택을 맘껏 누리고 사는 내 삶도 자연에 누를 끼치고 있음인 것을 왜 몰랐을까. 내 나름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과 동화되기를 소망하며 살아오던 중 나의 삶도 역시 자연에 누를 끼치고 있음을 깨우쳐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의 그 놀라움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 산속 생활에 커다란 부담으로 끝까지 따라다닐 일인지도 모른다. 그 눈빛.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내게 보내던 그 눈빛.

그리 늦지 않는 오후였다. 거실에 앉아 한가함을 즐기고 있는데, 느닷없이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그동안 짐승들이 집안으로 들어 진돗개에 쫓김을 당하던 때와는 달랐다.

산 속에 살다보니 가끔 있는 일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터라 무슨 일인지 어느 정도 판단이 서지만, 분명 이번은 달랐다.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가니 유리창이 깨져 바닥이 엉망이었다.

새였다. 넓은 산야를 맘껏 자유롭게 날던 것이 유리창을 알지 못하고 머리를 부딪쳐 고개가 부러진 것이었다. 작은 씨앗 같은 검은 눈에서 애처롭게 빛이 번득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온갖 고통의 괴로움을 호소하듯 보내던 그 눈빛. 한동안 그렇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던 새는 그 눈을 스르르 감은 후로 영원히 다시 뜨지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던 그 눈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이 산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저 새는 목이 부러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한 생명을 죽인 죄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까 보다.

굳이 내가 죽일 뜻이 없었어도 내 행동으로 죽어가는 목숨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지은 죄가 무수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 밤 잠 못 들게 한다. 먼 데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으어엉, 으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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