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발전위원회(위원장 김재봉)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민병욱)이 주관·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2019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거제신문이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지난 1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2019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거제신문 백승태 편집국장이 '아픔의 역사 거제, 평화로 치유하다'라는 주제 발표로 대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500만원이다.올해로 12회째를 맞은 2019 지역신문 컨퍼런스는 '포용과 혁신, 그리고 지역신문'이라는 주제로 △잊지 말자! 우리지역 역사 △NIE, 어떻게 진화하
거제시민 17명에게 물었다. "거제포로수용소를 알고 있습니까" 모두가 안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금 더 세부적으로 질문하면, 거제포로수용소를 아는 것이 아닌 고현동에 위치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아는 이가 17명 중 4명이나 됐다. 23.5%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만 알 뿐, 거제포로수용소의 역사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4명의 응답자는 아주동에 거주하는 중학생 1명과 외지에서 거제로 들어와 정착한 지 각 4년과 11년이 된 2·30대, 거제에서 나고 자랐지만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해 크게 생각한 적 없다는 아주동의 20
제2의 파리로 불리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는 1944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든 것이 몰락했다. 독일은 폴란드의 저항을 억압하려고 바르샤바를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폴란드의 국가적 전통을 없애려는 의도로 폐허를 만든 것이다. 건축물 85%가 모두 무너져내렸고, 당시 인구 130만명 가운데 살아남은 이는 그 절반인 65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그러나 70년이 지난 현재의 바르샤바는 살아남은 자들이 선대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의 치열한 현장을 엿보인다. 옛 러시아 양식과 현대 건축물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인간의 잔혹성과 야만성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이곳은 단순히 죄 없는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하고 노동을 강요한 곳이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곳으로 온 인류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공간이기도 하다.그러나, 그 어디에도 피 한 점, 유골 등 잔인할 수 있는 소재는 볼 수 없다. 당시를 상상하게 만드는 공간만이 보여줄 뿐이다.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지만, 소음은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당시 역사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모두 숨죽여
1979년 인간이 정치력에 취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학살.이 학살로 캄보디아는 당시 인구 800여만명 가운데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캄보디아의 현재 인구 1648만여명은 당시 살아남은 자이거나, 정치력에 기생했거나, 기득권자가 무시해도 될 만큼 무지했거나 중 하나의 자손들이다. 캄보디아에서 행해졌던 이 학살은 당시 뉴욕타임즈 특파원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기득권세력에서 고문관으로 활동하며 기록하고 사진을 촬영했던 이가 양심고백을 하면서 모든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2009년,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동아시아 근대화의 형성과정에서 발현된 국민적 책임의식, 평화 사상의 전개 과정을 담고 있는 기록물로서, 중요한 세계적 의미를 갖고 있는 역사적 사료이다.일반적으로 제국주의 국가는 침략의 수단으로 약소국에 차관을 제공해 식민지화를 추진했지만, 우리나라의 국채보상운동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전 국민이 외채를 갚기 위해 비교적 장기간 전개한 유례를 세계적으로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중국·멕시코 등 피침략국 국민의 일부가 외채 갚기 운동을 전개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들은 짧은 기간, 일부의
"이 기록유산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죽음을 조사하고 묘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잔혹한 인권 침해에 대해 설명하며 극도의 역경과 박해를 넘어선 인간승리에 대한 기록물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된다. 인류의 양심과 기억의 일부분으로 영원히 남아 있어야 한다."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장 로슬린 러셀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불의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음모와 학살의 만행에 저항했던 광주 시민들의 의로운 항쟁을 말한다. 외부로부터 철저한 고립 속에서 처참하
거제포로수용소는 6.25 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부터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됐다. 1951년 6월 말까지 인민군 포로 15만명, 중국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3000여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이곳에서는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했고 냉전시대 이념 갈등의 축소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은 1983년 1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거제포로수용소는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