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거제포로수용소, 유네스코 등재와 관광자원화 (완)]
거제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되다
관(官) 중심의 기록유산 등재 노력은 반쪽짜리 성공
시, 거제지역 유·초·중학생 상대 거제포로수용소 역사교육 필요성
범시민적 기록유산 등재 움직임→세계기록유산 등재 후 문화적가치 올라

거제시민 17명에게 물었다. "거제포로수용소를 알고 있습니까" 모두가 안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금 더 세부적으로 질문하면, 거제포로수용소를 아는 것이 아닌 고현동에 위치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아는 이가 17명 중 4명이나 됐다. 23.5%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만 알 뿐, 거제포로수용소의 역사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4명의 응답자는 아주동에 거주하는 중학생 1명과 외지에서 거제로 들어와 정착한 지 각 4년과 11년이 된 2·30대, 거제에서 나고 자랐지만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해 크게 생각한 적 없다는 아주동의 20대였다.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역사의 현장 중 하나인 거제포로수용소를, 그 공간을 향유하고 있는 이들조차 잘 모르는 것이 현 거제의 실정이다. 특히 17명 가운데, 거제시가 거제포로수용소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현재 추진 중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단 3명에 불과했다.

1950년대 거제포로수용소 일대 사진기록물로 왼쪽부터 1952년 6월부터 1여년 동안 운영된 유엔군 제1A 저구리 포로수용소로 현재 남부면 저구마을, 거제포로수용소 내 제85수용동에서 포로들이 시위하는 장면, 1951년 1월부터 3년 동안 운영된 유엔군 제1 거제포로수용소로 현 위치는 고현·수양동 인근이다.
1950년대 거제포로수용소 일대 사진기록물로 왼쪽부터 1952년 6월부터 1여년 동안 운영된 유엔군 제1A 저구리 포로수용소로 현재 남부면 저구마을, 거제포로수용소 내 제85수용동에서 포로들이 시위하는 장면, 1951년 1월부터 3년 동안 운영된 유엔군 제1 거제포로수용소로 현 위치는 고현·수양동 인근이다.

거제포로수용소의 희귀성·특별성을 알려라

거제시는 지난 2017년부터 국내·외 자료 수집을 위해 본격 활동에 나섰다. 6.25 전쟁에 대한 기록물은 거제시 말고도 국내에서는 국가기록원·육군기록정보관리단·전쟁기념관·독립기념관, 국외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영국 공문서관 및 제국전쟁박물관, 유엔기록보존부, 프랑스 국립기록원, 네덜란드 국립기록원 등에도 수백 건의 자료가 존재한다. 현재까지 국내·외 기관에서 7만8098장의 사진과 문서 등을 수집했다.

이 사진과 문서에 대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거제포로수용소의 가치를 크게 두 가지를 높이 평가한다. 첫째는 진본성이다. 18개국 43개 기관에 소장된 기록물들은 1950년 6월25일부터 6.25 전쟁기 자원송환원칙을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물들은 1차 자료이자 원본이고, 생산 맥락뿐 아니라 각국 아카이브에서 영구 보존돼오고 있다. 아카이브는 분실·파손에 대비해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데이터 파일의 사본을 보존하는 것으로, 원래 정부·관공서·기타 조직체의 공문서와 사문서를 소장·보관하는 문서관 또는 기록 보존소를 의미하는 보존 문서관에서 유래됐다. '진본'의 가치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는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불가능성이다. 6.25 전쟁은 남·북한 지역에 한정됐지만 참전한 국가의 수 16개국, 자원송환원칙에 따른 중립국 4개국, 전쟁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 국가 2개국 등 총 22개국이 관련돼 있다. 특히 세계냉전의 확대 및 심화로 이어지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본지가 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취재·보도했던 곳으로 왼쪽부터 광주·대구·캄보디아·폴란드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던 곳이다.
그동안 본지가 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취재·보도했던 곳으로 왼쪽부터 광주·대구·캄보디아·폴란드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던 곳이다.

시민 공감대 형성은 세계기록유산의 마중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광주 5.18 민주화운동, 대구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시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운동이고, 이 정신을 계승하는 이들 역시 시민들이다. 지역민들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운동 기록물을 모았던 이유는 진상규명과 지역의 명예회복이 우선이었고, 그 기록에 대한 진정성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데 큰 의미가 부여됐다. 광주·대구시민의 공감대 형성이 공공연하게 이뤄진 이후, 행정과 정치권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세계화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폴란드 바르샤바 문화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된 이유와도 동일하다. 독일군의 무분별한 폭격으로 수도인 바르샤바의 건축물 85%가 붕괴 되는 등 전쟁 이후 폴란드정부는 재건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재건 이전에 파괴된 도시를 박물관처럼 그대로 두고 수도를 이전할지, 복원할지에 대해 시민들과 치열한 공론화 작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최종 복원에 이르렀다. 전쟁 위로금이 재건 비용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모금 및 모금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운동이 펼쳐져 있지 않았더라면, 세계 최초로 복구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바르샤바 봉기박물관 마리아 바웬사(36) 학예사는 "복원된 바르샤바 옛 도심은 후손들에게 아픔과 동시에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며 "우리의 역사가 어떤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산 교육의 현장이 되는 것. 이는 정부가 주체적으로 나서서 할 수 없는 것, 역사적 교육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관 중심으로 세계기록유산이 추진된 캄보디아 킬링필드 기록물은 관계 공무원이 이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시민 중심으로의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관리자인 쌈체(Sam chea·36)씨는 "이 처참한 역사를 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는지 알 수 없다. 시민들도 알지 못한다. 방문객 대다수가 외국인인 이유"라며 "외국인에게는 잔혹한 참상의 볼거리일지 몰라도, 아직 캄보디아인에게는 차마 마주할 수 없는 역사"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 캄보디아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오롯이 '관' 중심으로 이뤄져 지난 정권의 참혹한 범죄현장을 보여주는데 급급해, 노약자나 심약한 이들은 출입을 자제해야 할 만큼 처참하다.

거제포로수용소 기록물...거제교육의 현장이 돼야

최근 거제시는 거제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국회의원 회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등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한 전국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지만 거제시가 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모여진 희귀 자료들이었다.

거제시가 추진 중인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에 정부와 국민의 성원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민의 성원 이전에 시민공감을 먼저 형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은 세계유산이 등재된 곳의 담당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내년이면 40년으로, 당시 투쟁을 벌인 이들도 모두 60대가 된 만큼 후손들의 기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시기"라며 "후세들이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공감대 형성이 우리 재단의 존재 이유. '기록유산 등재'에만 쫓기지 말고, 시민들이 이 기록은 세계적으로 평생 남겨져야 할 유산이라는 것을 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 상임이사는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조성돼 있고, 이를 활용한 거제지역 청소년들이 교육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그 역사를 계속해서 기억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 상임이사는 "행정 중심의 추진이 아닌, 시민사회에서 거제포로수용소 기록물의 가치를 높이 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지고 이를 추진하는 동력은 시민들의 공감대가 돼, 시민이 끌고 행정이 밀어주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으로 기록의 자산이 후세들에게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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