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지역에서 발굴된 가야시대 유물. @최대윤
거제지역에서 발굴된 가야시대 유물. @최대윤

'독로국은 왜와 국경을 접한다'라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서 알수 있듯 삼한시대뿐 아니라 가야시대 독로국은 대왜 교류가 활발한 국가였다. 이는 거제지역에서 발견된 고분 유적과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분 발굴과 유물출토는 그 자체가 역사다.

특히 가야와 같이 역사 기록이 부족한 시대는 고분과 유물의 특징으로 시대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제지역에서는 3세기 독로국 유물의 발굴은 미흡하지만 4세기 가야시대 유물부터 6세기 신라와 가야의 병합, 7세기 통일신라 지방 편제의 흔적이 거제 곳곳에 남아 있다.

지역에 남은 3~4세기 가야유적은 대금리 유적이 있다. 장목면 대금리 유적은 독로국이 남해안 여러 지역과 교류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독널묘(甕棺墓·옹관묘)가 밀집돼 있었는데 3세기 후반~4세기 초 삼국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5~6세기 거제지역에 남아 있는 가야의 흔적은 지난 2023년 3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거제방하리고분군 4차 발굴 고분군과 출토유물, 그리고 장목 고분에서 찾을 수 있다. 

5~6세기 조성된 가야계 방하리고분군과 일본계 장목고분에서는 가야시대 토기와 무기류, 철갑류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독로국에 이어 가야시대 거제에 무장세력이 있었고 왜와 활발한 무역을 이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제에는 가야와 관련된 지명도 남아 있다. 남부면 가라산이 그 곳인데 '라(羅)'는 고대 한자어로 '땅, 지역'을 의미한다. 

'가라(加羅)는 가야의 또 다른 이름으로 '가라산'이라는 지명은 최소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한국사 산책 - 가야의 역사

삼한시대 변한을 이은 소규모 연맹 국가였던 가야는 전기에는 김해시의 금관국이, 후기에는 고령군의 반파국이 주도권을 잡았다. 가야는 중앙 집권화된 광범위한 고대 영역국가로 발전한 고구려·백제·신라와 달리 멸망할 때까지 도시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통일된 정치 단위를 이룬 적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 가야는 고령의 대가야가 주도권을 잡았으나 562년 신라의 진흥왕이 이사부와 사다함에 대가야 토벌을 명하면서 신라에 병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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