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백지화 수순...먼저 나서 "포기하자" 말 못해
소요경비 50억원 가량...책임 논란·소송 가능성 제기

권민호 전 거제시장 재임시절부터 추진됐던 거제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으면서 청산 절차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해도 성공 가능성에 자신이 없고, 먼저 나서 포기하자고 할 수도 없는 애물단지 신세다.

사업을 백지화하고 청산 절차를 밟을 경우 이미 투입된 비용과 책임소재를 두고 논란도 예상된다.

사업 성공을 약속하며 지역 정치인들의 단골 공약으로 남발되기도 했지만, 계속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현재로선 헛공약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앞서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대기업의 SPC 구성원 참여 확정, 실수요기업 추가 확보를 통한 산업용지 분양수요 충족, 자금조달 계획 적정성 등이 미흡해 산업단지 승인은 곤란하다는 의견을 회신했다. 사업 추진에 필수요건인 환경영향평가(환평) 시한 또한 지난 7월17일 만료됐다.

거제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추진됐던 거제시 사곡만 일대 전경. /사진= 옥정훈 기자
거제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추진됐던 거제시 사곡만 일대 전경. /사진= 옥정훈 기자

# 환평 시한 만료 석달 지나도 대책 전무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면 환경영향평가가 선행돼야 하지만 다시 환경영향평가를 하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수억원의 비용이 든다.

추진동력 또한 미진해 환경영향평가 효력 만료가 석달이 지나도 거제시와 실수요조합인 강서산단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다시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사업을 재추진하더라도 국토부가 요구하는 보완사항 충족을 장담할 수 없고 승인 또한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거제시는 강서산단에 향후 추진계획 등을 공문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물었지만 아직 정확한 답변은 없는 상태다.

시는 의견이 회신 되는대로 각 주주사와 협의해 이사회 및 주주총회를 통해 향후 추진 방향을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쟁점은 답보상태에서 10년째 표류하던 이 사업에 대해 '계속 추진하자, 말자'를 누가 먼저 나서 주장하고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그렇다고 뚜렷한 출구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거제시가 섣불리 국가산단을 포기하거나 사업 방향을 전환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힘든 처지다.

# 거제시 "주민 피해, 보상행정 펼치겠다"

이런 가운데 박종우 거제시장은 지난달 28일 노재하 시의원이 '향후 추진방향'을 묻는 질문에 '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은 청산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청산 과정에서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발언이 조심스럽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토지거래허가제한구역에 묶여 피해를 본 주민에 대한 보상행정을 펼치겠다'고 했다.

이같은 발언은 강서산단의 최종 결정과 SPC(특수목적법인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주식회사)의 총회 결과를 기다리겠지만, 사실상 사업을 포기하고 내심 청산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표현이나 다름없다. 사업 지연에 따른 피로감과 사회적 갈등·사업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사업예정지 일대가 토지거래허가제한구역으로 묶여 토지주들의 재산권 행사에 걸림돌이 됐었다.

인근 아파트단지 도시가스 인입이나 학생 통학로 등 실생활과 밀접한 사업들까지 덩달아 지연돼 거제시의회도 집행부의 과감한 결단을 압박해 왔다.

사업예정지 인근 토지들은 그동안 토지거래제한구역이나 개발행위제한구역으로 10여년간 묶여 지주들이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아왔고, 지역 현안사업도 상대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토지주들은 제한구역 해제를 요구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거제시는 국가산단 예정지 인근에 남부내륙철도 종착지가 예정된 만큼 주변 토지와 함께 역세권 개발계획으로 전환도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민들이 손해 봤던 지역개발 등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주민숙원사업들을 좀더 챙겨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 해양복합레저타운 조성 등 출구전략 모색해야

하지만 가장 큰 사안은 출구전략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다.

박종우 시장에 따르면 이 사업을 위한 SPC의 총자본금은 30억원이며, 거제시는 20% 지분 6억원이 들어갔다. 거제시(20%)와 함께 한국감정원(10%)·실수요자조합(30%)·SK건설컨소시엄(30%)·경남은행(10%) 등이 지분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용역비로 들어간 비용은 46억9000만원 가량이며, 실수요자조합인 강서산단에서 댔다.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추진된 사업에서 거제시가 일방적으로 사업중단을 요구할 경우 투입된 용역비 등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

거제시에 불이익이 올 수 있고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어 먼저 나서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국가산단 조성이 어렵다면 해양플랜트산업에 국한하지 말고 다양한 업종을 유치하면서 단계별로 실행 가능한 집행계획을 수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김한겸 전 시장 시절 검토됐던 사곡만 해양복합레저타운으로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대두된다.

거제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은 거제시 사등면 사곡리·사등리 일원 458만㎡(육지부 157만㎡·해면부 301만㎡) 부지에 산업용지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기간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계획했다. 사업비는 약 1조7340억원이었다.

기존 산단과 달리 지자체와 실수요자·금융·건설사가 손잡고 사업비 전액을 조달하는 국내 최초의 민간 투자 방식 국가산단으로 추진된지 10년이 지난 오래된 사업이지만, 국토부가 요구하는 실수요자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 사업승인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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