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거제신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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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장승포항이 세계적 평화의 도시로 거듭나면서 다크투어의 메카로 부상하고, 거제사람이면 한 번쯤 흥남철수작전과 장승포항의 가슴벅찬 휴머니즘 및 자긍심을 느끼길 기대하며 첫 번째 글을 시작한다.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에 따른 거제도 주민들의 피난민 수용은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중요한 역할뿐만 아니라 인류 전쟁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간 존엄성 실현의 인도주의적 작전이자 인류애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의 주장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조명됐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 역사적 사건이 만들어낸 인간존엄 실현의 현장과 피난민들의 종착지인 장승포항의 평화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할뿐 검증을 거쳐 체계화나 연구돼 있지 못하다.

김치(1~5)의 탄생 이야기도 수년전 흥남철수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전쟁영웅 추모제 참석차 방한한 미국 선원 중 생존자의 증언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흥남철수작전에 동원된 배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포함한 LST 193척이다. 민간인들의 후송은 1950년 12월19일부터 시작됐다. 흥남에서 마지막으로 떠난 후송선은 온양호라는 배로 12월24일에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빅토리호가 마지막 배라는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금이라도 흥남철수작전과 장승포항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구와 계승·발전이 필요할 것 같아 부족하지만 조심스런 제안을 한다.

6.25전쟁은 수많은 유엔군이 참전한 평화수호 전쟁이었다. 이중 장진호전투는 중공군 제9병단의 포위를 뚫고 흥남철수작전을 가능하게 한 미 해병1사단과 국군의 피로 만들어낸 값진 승리였다.

이로 인해 흥남철수작전이 가능해졌다. 작전은 단순한 전술상의 후퇴가 아님을 증명하듯 피난민 10만명은 물론 국군과 유엔군 10만여명과 함께 수많은 군사 물자를 적에게 넘겨주지 않으면서 15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안에 철수를 완료했다.

흥남철수작전이라고 하면 피난민 1만4000여명을 수송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만 기억될 수 있겠으나, 철수작전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 제10군단의 장병 10만명과 차량 1만7000대, 탱크를 포함한 군수용품 35만톤(10톤 트럭 3만5000대), 피난민 약 10만명을 15일만에 해상으로 철수시킨 이 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가장 위대한 대규모 작전으로 평가 받는다.

이 작전은 2차 세계대전중 1940년 '덩케르크 철수작전'과 비교되곤 한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2차 세계대전중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안에서 벌어진 철수작전으로 영국군 22만, 프랑스·벨기에 연합군 11만명이 독일의 포위망을 뚫고 영국으로 철수한 작전이었다.

훗날 이 병력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 투입돼 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꾸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장진호전투가 한국전쟁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점과 흥남철수작전의 10만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군수 물자들을 무사히 철수해, 이후 전쟁에 재투입돼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됐다는 것이 2차 세계대전의 덩케르크 철수작전과 닮았고 의미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덩케르크 철수작전보다 흥남철수작전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전쟁 피난민 10만명과 함께 철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인류 전쟁사에서 찾을 수 없는 인간 존엄성 가치를 실현한 인도주의적 실천으로 평가받는 이 작전이 '크리스마스 카고'라는 작전명과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게 된 것도 전쟁속에서 소외되는 피난민 10만명을 함께 탈출시킨 휴먼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만들어낸 거제 장승포항의 크리스마스의 기적에 대한 부분은 다음 글에서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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