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대낮인데도 도서관은 형광등을 있는 대로 모두 밝혀 두었다. 하나 건너씩 불을 꺼도 될 텐데 싶다. 적당한 크기의 칸막이 책상은 두 줄 8칸으로 되어있다. 한 칸이 앞뒤 8개의 책상으로 되어있어 넓지는 않으나 꽤 여러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 지금 이 도서실에는 모두 7명이 각자가 선택한 자리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장래의 꿈을 연마하거나 성취하려는 노력이리라. 요즘 들어 작가 수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소설가가 되려는 꿈이 있었다. 소녀 적부터의 꿈이었다. 어찌해서 생긴 꿈인지는 잊었으나 그것은 나의 삶의 의
오늘따라 주차하기가 어려웠다. 운동장을 끼고 한 바퀴를 다시 돌았다. 마침 주차돼 있던 차 한대가 빠진다. 하지만 내 앞에서 느리게 가고 있는 차가 차지할 자리다. 더운 날씨 탓에 지치기도 하고 회의에 늦진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도대체 다들 무슨 볼일로 차가 이렇게 많은건지 혼자서 중얼거리며 앞차를 괜히 노려본다.앞차는 주차하려고 오른쪽 벽으로 붙이려 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청소하시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그 자리로 이동해 비질을 시작한다. 앞 차가 머뭇거리자 한 분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환경정화 조끼를 입으신 분들인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매번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고해소 앞에서 서성거리길 여러 번. 큰 맘 먹고 섰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또 다시 그 문을 열지 못하고 돌아선다. 고해소 앞의 무성했던 나뭇잎은 내가 용기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동안 어느새 낙엽으로 내려앉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다. 며칠 사이에 나뭇가지를 두른 작은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에 마냥 설레지만 않는 것은 올 한해도 마음의 짐들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지낸 시간도 어느덧 2년. 가려진 마스크 때문일까 마
북병산 기슭에 오두막을 지었다. 주춧돌을 놓고 준비해놓은 소나무로 기둥을 세웠다. 수평과 수직의 물매를 맞추어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올려 상량을 하면서 간단하게 막걸리로 천지신명과 조상님께 감사함을 표하였다. 작은 집이지만 후일 평생을 함께할 벗님으로 생각하니 뿌듯하다. 서까래를 올려 흙으로 지붕을 덮고 형틀을 맞추니 곁에 서 있는 나무들은 더욱 푸르게 보이고, 매미들은 아쉬운 늦더위를 부여잡고 울어댄다.구들을 놓고 통풍이 잘되는지, 황토와 짚을 섞어 짓이겨 구들 위에 골고루 발랐지만 행여 연기가 새지 않을는지 조심스럽게
그냥 두기 아까운 햇살이다. 평발이라는 이유로 걷는 것이라면 질색이지만, 오늘은 하릴없는 사람처럼 어슬렁거리며 아파트 단지를 걷는다. 다 늘어진 티셔츠에 트레이닝바지, 벙거지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뻔뻔스러워진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봄꽃이다. 아직은 바람이 찬데 잎도 없는 나뭇가지에 송이송이 꽃이 매달려있다. 부지런한 '겨울눈' 때문이다. 겨울눈이란 이름만으로 겨울에 생겨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여름부터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른 봄꽃을 보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숨을 헐떡이게 만드
바람이 분다. 이내가 낀 것처럼 하늘이 우중충해진다. 어제의 일기예보가 이리도 잘 맞아 떨어지는지 거리는 뿌옇게 황사가 깔리기 시작한다.황사는 겨울 내내 얼어 있던 건조한 토양이 녹으면서 미세한 모래먼지가 고공으로 올라가 대기 중에 떠다니다가 상층의 강한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부근까지 운반되어 온 것이다. 주로 몽골과 중국의 고비지역 등에서 발생한 모래먼지다. 자연의 테러라 불릴 만큼 인류에게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황사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내가 한국로타리 총재였을 때였다. 100주년 기
겨울이 시작되려나 보다. 뒷산의 오솔길에는 떨어진 갈잎들이 우수수 몰려다니거나 쌓여 있다. 바스락 바스락 조용한 숲길에서 갈잎을 밟으면서 걷는다. 자주 걸어서 익숙한 길. 그러나 산의 풍경은 사뭇 달라져 있다.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나무나 바위들이 모든 잎들을 떨어뜨려버린 계절에서는 그대로 훤히 내 눈에 들어온다. 저렇게 가까이 있었던가. 그동안 나뭇잎들로 보이지 않았었구나. 그렇구나. 겨울이 되면서 그간에 서로 두었던 거리를 이제 접어두고 가까이 기대어 가려는 모습이구나. 봄과 여름에는 서로가 햇빛을 다투려고, 자리를 먼저 차지하
친정에 가면 거실 한구석에 낡은 의자가 있다. 오랜 세월 거실에 버티고 있는 의자는 이제 그 수명이 다하여 언제고 버려질 듯한 모습이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다니러 왔을 때 내다 버린다고 하면서도 막상 버려지는 게 아쉬운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두 종류의 책상이 있었다. 하나는 앉은뱅이책상이요, 다른 하나는 의자가 딸린 책상이다. 앉은뱅이책상은 오빠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직접 목재소에서 자재를 구해 와서 짜주신 책상이다. 아버지는 그 책상에서 올망졸망 공부하는 우
흐르는 개울물에 빨래를 한다. 박수근 화가의 빨래터 그림에는 여인들이 쭈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6.25 전후 집집마다 수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어린 나도 개울에 빨래하러 가는 어머니를 종종 따라다녔다. 넓적한 돌팍에 빨랫감을 착착 치대여 흐르는 개울물에 뽀득뽀득 몇 번이나 헹궈 낸다. 한겨울에는 차가운 얼음물에 어머니의 손이 다 갈라졌다. 빨래는 방망이로 오지게 맞아가며 누런 땟물을 뱉어낸다. 오래 입어 찌든 때가 남아있는 러닝셔츠, 팬티, 옥양목 이불호청은 비누로 착착 치대어 양은 대야에 담아 연탄불에 푹 삶는다.
지금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고성군 삼산면 바닷가, 남포항을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와 파도 소리를 벗 삼아 있다면 좋으련만 인근 생활 폐기물처리장이다.거제시 재활용센터의 자동분리기 교체공사에 이어, 고성군 생활폐기물 처리장 공사까지 맡아서 해 달라는 주문이 연이어 들어왔다. 폐기물 자동분리기 철거와 설치공사를 하는 무더운 복날이다. 나 또한 먼지로 돌아갈 날을 더듬어 보는 스산한 생각에 잠겨 보았다.명색이 생활폐기물 처리장이지 말 그대로 쓰레기하치장이다. 분리수거가 잘 될 재활용품은 파쇄하여 생산공장의 원자재로 공급되지만, 문제는
작은 존재, 극히 작은 존재로 살고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말이다. 138억년 전쯤, 우주 대폭발이 일어날 때 생긴 작은 점 하나가 지구다. 이다지도 큰 땅덩이가 우주에서는 작은 점으로 묘사된다면, 그 속에 사는 '나'라는 생명체는 먼지보다 미세한 존재가 틀림없다. 그러기에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현미경 같은 시력을 주지 않은 조물주에 감사하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대유행할 때, TV를 켜면 수시로 방영되던 '비말(飛沫)의 경고'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마스크 착용이 필요한 이유를
방학을 맞아 작은아이와 한동안 집을 비웠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큰아이와 살뜰하게 지낸 남편이었지만 집안 곳곳은 어수선했다. 냉장고 안에는 버리기도 먹기도 애매하게 남은 음식들로 가득했다.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들, 왠지 시들해 보이는 식물. 원래 나의 자리가 이리도 빛나는 자리였던가.엄마로서의 빈자리, 아내의 빈자리, 집을 떠나가 있는 동안 내 빈자리는 너무나 커 가정의 중심은 마치 나로 인해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이곳저곳에 널려있다. 집안을 둘러보니 몸과 마음이 어수선하다. 오랜만에 집으로 왔으나
오래 기다렸다.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채우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여행이다. 집합 금지가 풀리며 봇물 터지듯 일상에서의 탈출을 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지인들은 우리들도 어디든지 떠나보자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 벌써 여행지에 온 사람처럼 신이 나 있다. 나도 덩달아 들떠 마음에 봄바람이 분다. 하지만 몇 해 전 여행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살짝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여행에도 궁합이 있다. 가끔은 TV에서 부부간 궁합을 이유로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세상에 무슨 얘긴가 싶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여행
내 나이 11살 때였다. 그해도 계묘년이었다. 내가 그 때를 잊지 못하는 것은 삶과 죽음을 경험한 해였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배고팠던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계묘년에 긴 장마로 보리농사를 망쳤으니 그 여파가 다음 해 봄으로 이어졌다. 면사무소로부터 밀가루를 배급받으면 아홉 식구가 두 끼 수제비를 끓여 먹을 양밖에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바구니를 들려 들로 내몰았다. 쑥을 뜯어와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였다. 형들을 따라 칼과 바구니를 들고 논두렁·밭두렁·하천 둑길을 헤집고 다녔다. 배는 허기져서 고픈 데 쑥
한숨이 나온다. 책상 위 군데군데 흩어져있는 이면지 종이들. 일정하지 않은 글자로 질서 없이 긁적인 흔적들. 이 글들을 보고 있으니 아침 길을 나서며 퍼석한 긴 파마 머릿결이 엉켜있던 아가씨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정리되지 못한 책상이 마치 헝클어진 머릿결같이 느껴졌다. 글자뿐 아니라 어지럽게 그려놓은 곡선 직선들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적혀있는 그 모든 활자체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먹구름이 된다. 그 먹구름은 비가 오기 전 신호를 보내는 허리통이나 두통처럼 내게 통증이 되고 있다.집을 나서는데 식탁 위에 놓인 독촉장이 보인다.
일주일째다. 물들어 가는 산이 보고 싶었던 그 날을 시작으로 벌써 일주일째다. 시원한 바람과 새들의 노랫소리 가득한 숲에서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햇살에 반짝이는 작은 호수가 보고 싶었다. 마치 사랑을 시작한 여인이 된 듯했다. 함께 가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아서일까. 여느 날보다 설렘으로 마음이 바쁜 아침이다.온 산이 제 색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한데 어우러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나무들의 모습에 눈이 간다. 잎의 모양도 키의 크기도 어느 것 하나라도 같은 것이 없다. 푸른 그늘을 내어주던 잎들이 숨겨둔 제
건너다보이는 섬은 어둠을 베고 누워 있다.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별빛이 내려앉은 밤바다의 물결이 흔들리듯 내 가슴에도 잔잔한 너울이 인다. 눈을 감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작은 호롱불 하나가 켜진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유년의 기억 속 불빛이다.섬에는 오로지 외갓집뿐이었다. 내가 외갓집에 갈 때는 언제나 외삼촌이 거룻배로 나를 실어다 줬다. 낡은 목선에서 나는 노 젖는 소리를 들으며 외갓집으로 향하는 뱃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했다. 외삼촌은 능숙한 노질로 흐느적흐느적 부드러운 물소리를 내며 섬을 향해 나아갈 때
겨우내 비워뒀던 시골집에 왔다. 아내와 함께 도착한 때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 중순의 저뭇한 무렵이었다. 포구의 가로등 불빛이 수면에 반사돼 추위에 떨고 있었다. 몸이 추우면 마음도 차가워진다더니 빈말은 아니지 싶다. 집안 문을 연 순간 한데처럼 썰렁했다. 얼른 보일러의 스위치를 켰다. "우-웅" 우렁찬 소리와 함께 보일러의 불꽃이 탄다. 자신을 활활 태워서 열을 발산하는 기름의 희생이 고맙다. 한참 동안 기운차게 작동하던 보일러가 갑자기 멈췄다. 심장마비로 절명한 사람의 신세가 이럴까. 보일러 전원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켜
겨울이 시작되려나 보다. 뒷산의 오솔길에는 떨어진 갈잎들이 우수수 몰려다니거나 쌓여 있다. 바스락 바스락 조용한 숲길에서 갈잎을 밟으면서 걷는다.자주 걸어서 익숙한 길. 그러나 산의 풍경은 사뭇 달라져 있다.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나무나 바위들이 모든 잎들을 떨어뜨려 버린 계절에서는 그대로 훤히 내 눈에 들어온다. 저렇게 가까이 있었던가. 그동안 나뭇잎들로 보이지 않았었구나.그렇구나. 겨울이 되면서 그간에 서로 두었던 거리를 이제 접어두고 가까이 기대어 가려는 모습이구나. 봄과 여름에는 서로가 햇빛을 다투려고,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
잠에서 깨어난 것은 요란한 빗소리 때문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씻어내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비는 서두르고 있었다.이렇게 내린다면 도저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더니, 아침이 되자 어젯밤 일은 다 잊은 듯이 고요하기 그지없다. 베란다 난간에는 간밤 그렇게 소란을 피웠던 빗방울들이 다소곳이 망울 되어 줄을 서 있다. 비 온 뒤에 펼쳐 놓은 아침의 고요는 적막과는 또다른 들떠있던 세상의 소리들을 숨죽여 아우르는 신비한 침묵이다.이런 고요함 때문인지 베란다 건너 마주 보이는 산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게 들린다. 비를 피하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