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거제수필문학
김지영 거제수필문학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매번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고해소 앞에서 서성거리길 여러 번. 큰 맘 먹고 섰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또 다시 그 문을 열지 못하고 돌아선다. 고해소 앞의 무성했던 나뭇잎은 내가 용기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동안 어느새 낙엽으로 내려앉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다. 며칠 사이에 나뭇가지를 두른 작은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에 마냥 설레지만 않는 것은 올 한해도 마음의 짐들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지낸 시간도 어느덧 2년. 가려진 마스크 때문일까 마스크로 가려진 마음 때문일까. 코로나19를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고해성사를 보기위해 다른 해보다 고해소를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이런 나와는 달리 아이들에게 고해란 일 년에 한 번 쯤 있는 이벤트처럼 가벼운 마음인가보다. 하긴 친구와 싸운 일, 엄마 심부름 하지 않고 공부하라는 엄마 말 듣지 않은 일 등이니 고해소에 가는 일이 뭐 그렇게 두렵겠는가.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장난기를 빼고 약간은 진지하게 신부님께 얘기하는 느낌일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고해소를 향하는 발걸음이 오히려 신이 나 보인다. 자기의 죄를 빨리 고하고 신나게 놀 궁리를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배어있지 않다.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다. 고해소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초조해진다. 그 동안 얼마나 망설였는지 손때가 묻어 꼬깃해진 성사표가 말해준다. 

한 낮의 해도 서쪽으로 기울었다. 오늘은 기필코 마음의 죄를 내려놓고자 다짐해본다. 고해소는 보통 성당의 뒤쪽에 마련되어 있다. 가깝고도 먼 거리. 바로 곁에 두고서도 먼 곳으로 느껴지는 것은 다가서기 쉽지 않은 마음 탓이다. 성당 뒤편의 거리만큼 두려운 마음을 가다듬기에 필요한 거리이다. 고해소는 두 개의 출입문이 있다. 그 출입문 위에 등이 켜져 있으면 누군가가 삶의 죄들을 씻어내기 위한 '고해성사'를 하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차단되고, 죄를 고하는 자와 듣는 자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지은 죄를 고하고, 죄를 용서받기를 바라는 지극히 간절한 행위다.

가슴 깊숙이 숨겨놓은 죄를 사제 앞에서 고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죄를 고하기에 앞서 먼저 나를 성찰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롯이 나를 돌아보아야만 고해소를 찾을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고해성사의 무게를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가장 죄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야만 죄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신부님의 말씀처럼 기도는 자신의 가장 간절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고해는 나의 가장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고 속죄하며 그 자리에 온전한 마음을 채우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울까? 한해를 보내는 12월에 서다 보니 잘못한 일들만 떠오른다.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던 일이 있다. 잊은 듯했다가도 마음에 남은 흉터를 보는 날이면 그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나를 힘들게 한다. 나를 아프게 한 상대가 먼 이웃 같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상처가 컸다. 자신으로 인해 우리 가족이 입은 피해가 얼마만큼 큰 것이었는지 뻔히 알면서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그의 뻔뻔함을 보면서 마음이 내려앉았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알면서도 모른 척 한쪽 눈을 감고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 않는 것이 미웠다.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의 이기심이 너무나 싫었다. 어쩌면 그의 행동도 인간이기에 숨겨진 못난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를 용서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해가 바뀌면 좋든 싫든 지금의 내 나이에 한 살을 보태게 된다. 이제는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그릇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그를 원망하며, 미워했던 마음이 사라질 수 있도록. 나 또한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일들에 잘못은 있었을 터이니 하느님께 용서를 구해야겠다. 고해소에 앉아 있는 내 마음을 어여삐 보아 나의 모든 잘못들을 용서해주시겠지. 내려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구겨진 성사표를 들고 고해소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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