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신라시대 이후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은 음력 1월1일 설이다. 그러나 설의 수난은 1895년 갑오개혁 때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채택하면서 시작됐고,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면서 본격화 된다. 양력설은 '신정' 음력설은 '구정'이라 불렀다. 신정은 신문명이고, 구정은 구시대의 낡은 풍습이라 폄훼했다.

1930년대는 아예 대놓고 탄압하던 시기였다. 음력설이 오면 떡방앗간은 문을 닫아야 했고, 설빔을 차려입고 나오면 먹물총을 쏘았다. 순사는 어느 집에서 음력설을 쇠는지 조사하러 다녔고, 고향을 찾는 사람은 요시찰인물로 감시했다. 그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사람들은 쉬쉬하며 음력설을 쇘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모처럼 설다운 설을 맞았다. 그러나 1949년, 자유당 정부는 양력 1월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설은 뒤로 밀려났다. 박정희 정권은 한걸음 더 나아가 '구정은 시간과 물자를 낭비한다'라며 설에 관공서·은행은 물론이고 일반기업도 쉬지 못하게 했다.

1963년 청마 유치환은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 '설 기분이 흐리멍덩한 이유는, 어쩌면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의 설날이 우리에게는 둘이나 있어 오히려 이것도 저것도 설 같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1985년 전두환 정부는 민심을 쫓아 음력 1월1일 하루를 '민속의 날'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휴일로 정했다. 1989년 노태우 정부에 이르러 연휴 기간을 3일로 늘려 바야흐로 설이 됐다. 개화기와 식민지·산업화시대를 거치는 동안 푸대접 받아 온 설의 부활이었다. 문화재청은 올 5월부터 설과 대보름·한식·단오·추석·동지를 5대 명절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게 된다.

작년 12월 유엔에서는 음력설을 공식휴일로 지정했다. 중국은 '이번 결정이 중국문화의 영향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치나 한복을 자기들 것처럼 우기더니 이번에는 설조차 자기 문화로 훔쳐가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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