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소굴이 된 거제도는 전후 복구가 힘들 정도로 황폐해 있었다. 

고현성 내 지어진 관청 건물도 불에 타 무너져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물과 토질이 나빠 병으로 죽는 관리가 많았다. 

여기다 거제로 유배 온 죄인들의 관리가 힘들어 광해군 9년(1617)에는 거제로 유배 온 죄인 중에서 168명이나 도망갔다는 기록도 있다. 

현종 5년(1664) 경상감사 이상진(李尙眞)이 거제의 수군진을 정비하는 문제와 거제현(巨濟縣)의 읍치를 명진촌(明珍村)으로 옮겨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면서 관아와 향교를 지금의 거제면으로 옮겼다. 

거제향교는 1715년 다시 거제의 동쪽 기슭 도륜동(道淪洞) 아래 옮겨 세웠다가 1790년에 계룡산(龍山) 아래로 이건 후 186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다.

거제현의 읍치를 고현지역에서 거제면으로 옮길 당시 거제는 거제현의 읍 수군(죽림포)을 비롯해 지세포·옥포·영등포·조라포·장목포·율포·가배량·소비포 등 9곳에 수군진이 있었고, 통제영의 8전선보다 많은 10전선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제지역을 관할했던 거제현령은 종5품으로 종4품인 각 수군진의 만호보다 품계가 낮아 거제지역의 행정 및 병력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 

1704년 거제현령으로 부임한 변진영은 거제 유학 신수오(辛受五)와 함께 조정에 상소를 올려 거제현을 부(府)로 올리고 거제부사가 방어사(각도에 배속돼 요충지를 지키는 병권을 가진 종2품의 벼슬)를 겸임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통우후(統虞候)에 임명된 변진영은 숙종 37년(1711) 거제부의 승격과 함께 초대 거제부사에 임명된다.

거제8진이 있는 거제부 지도.
거제8진이 있는 거제부 지도.

★ 한국사 산책 = 숙종대 환국

환국은 시국과 정국이 바뀐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 집권 세력이 바뀜에 따라 정국이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숙종은 환국을 통해 서인과 남인 사이의 세력을 조절해 왕권을 강화했다. △숙종 6년(1680) 남인(南人) 일파가 정치적으로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한 경신환국(庚申換局) △숙종 15년(1689) 장희빈의 책봉을 반대한 송시열을 비롯한 한 서인이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한 기사환국(己巳換局) △숙종 20년(1694) 남인이 인현왕후 민씨의 복위문제와 관련돼 대거 축출당하고 기사환국 때 몰락했던 서인이 재집권한 갑술환국(甲戌換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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