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친 딸을 두고 글자깨나 읽은 유식한 부모는 '과년한 딸자식'이라고 말한다. 국어사전에 '과년하다'를 '여자 나이가 혼인할 시기를 지나다'라고 풀이한다. 그 말은 '여자는 혼인하기에 적절한 나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결혼도 선택이라는 시대에 바람직한 표현이 못 되는 것 같다.

과년(過年)과 다르게 과년(瓜年)이 있다. 나이의 이칭(異稱)으로 전통적으로 일반 여염집에서 쓰이던 말이다. 과(瓜)는 '오이'를 뜻한다. 나이에 있어 과년(瓜年)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과(瓜)자를 파자하면 팔(八)과 팔(八)이 된다. 이 둘을 합하면 8+8=16으로 곧 여자 나이 16세를 가리킨다. 고전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팔청춘'이 과년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속삭인 때가 바로 열여섯 살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겨우 중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지만 옛날에는 법으로 허용된 결혼할 수 있는 나이였다.

둘째, 여자 나이 열여섯을 파과기(破瓜期)라고 했다. 본래 이 말은 파과지년(破瓜之年)에서 왔는데 '오이를 쪼개는 나이'라는 뜻이다. 중국 진(晉)나라 때 손작(孫綽)의 시 '정인벽옥가(情人碧玉歌)'에 나온다. '碧玉破瓜時(벽옥파과시) 푸른 구슬이 외를 깨칠 때 /郎爲情顚倒(낭위정전도) 임은 마음을 쏟아 사랑한다.'

여기서 '파과(破瓜)'는 일반적으로 초경을 뜻하거나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을 두루 가지고 있다. 여자아이와 오이를 연결하게 하다니 참으로 발칙한 상상이긴 하지만, 과(瓜)라는 한자의 외연은 오이지만, 내연은 성숙과 다산의 상징이었다.

셋째, 오이 과(瓜)를 둘로 나누어 합하면 16이 되지만 곱하면 즉 8×8=64가 된다. 여자에게 있어 열여섯은 꽃다운 나이지만, 남자에게 있어서는 예순네 살은 남성의 상징인 오이가 힘을 잃어 벼슬에서 물러날 나이라고 여겼다. 남자 나이 64살의 이칭 또한 과년(瓜年)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