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나는 정의의 기사다."

서구문학에서 가장 널리 읽힌 고전작품 중 하나인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에 나오는 말이다. 기사 이야기를 읽고 환상에 빠진 돈키호테는 기사가 되어 악당들과 싸우겠다고 결심한다. 종자 산초와 늙어빠진 말 로시난테를 타고 여행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 무더운 7월 한여름에 철갑옷을 입고 어느 주막집에 도착해 소란만 일으키자 주인은 빨리 쫓아낼 생각으로 그가 원하는 기사 임명식을 하게 된다. 그의 이상한 행동은 그렇게 시작된다.

기사(騎士·knight)라고 하면 여성에 대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 백마를 탄 왕자와 같은 이미지를 연상한다. 지금도 '기사도'라 하면 여성에 대한 예절과 헌신적인 태도로 레이디 퍼스트가 몸에 밴 그런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중세교회는 기사에게 세 가지의 할 일을 주었는데 신에게 봉사하고, 주군에게 충성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주군이란 레이디(Lady)를 말한다. 레이디(Lady)라는 단어는 Lord(왕·하느님·주군)의 여성형으로 신분이나 지체가 높은 신분일 때 쓰이는 단어였다. 굳이 따진다면 '레이디 퍼스트'라 하니 보편적인 모든 여성에 대한 배려인 것 같지만 사실은 기사가 모셔야 할 귀족 신분의 여성을 말한다. 주군이 부하보다 앞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레이디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숙녀(淑女)'다. 사전적으로는 교양과 예의를 갖추고, 지적수준이 높은 부유층의 여성에 대한 존칭이다. 따라서 적어도 숙녀의 반열에 올라야 '레이디 퍼스트'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슬픈 유래가 담겨 있다.

유래야 어떻든 간에 근대 서구의 신사도는 여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레이디 퍼스트라는 원칙으로 활용해 왔다. 사랑받는 선녀라면 남자는 스스로 나무꾼이 돼줄 것이니 신사보다 오히려 더 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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