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1차 출정은 3박4일 동안 거제도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서 3곳의 전투에서 승리한 해전이었다. 거제지역 향토사에는 옥포해전에서 30척 중 26척의 전선을 잃은 왜군은 옥포진성에서 전열을 재정비해 옥포해전 이틀 후인 5월 9일 거제현의 중심인 고현성을 침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곧바로 거제의 조라, 지세, 율포 영등포 등은 이미 왜군이 점령했고 거제현령 김준민이 홀로 고현성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옥포해전이 벌어진 시기에 김준민은 제승방략 전술에 따라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집결 명령에 경상도의 주요 거점이었던 진주성 방어를 위해 고현성을 떠난 상태였다. 이에 옥포해전이 벌어진 시기 고현성은 관군이 아닌 거제 백성들로 구성된 의병이 지키게 됐다. 

거제현령 김준민은 고현성을 떠나면서 만산(晩山) 김후석(金厚錫)에게 지역방어를 부탁하고 출전했다. 이후 고현성은 윤승보(尹承輔)가 성주를 맡아 지휘하고 그의 아들 윤영상(尹榮祥)과 신응수(辛應壽)김희진(金希璡) 등 이른바 거제 삼장사 및 거제백성 수백명이 고현성에서 왜군에 맞서 항전했으나 결국 함락 당한다. 

특히 거제 삼장사를 비롯한 거제의 의병들은 왜군에게 고현성을 뺏긴 이후에도 하청장터 및 연초 밀바대들(연초면 다공리 일원) 등에서 왜군을 공격해 적잖은 성과를 얻기도 했다. 훗날 고현성을 지킨 의병장들과 백성들은 원균의 장계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1991년 동아대 조사보고서에 발표된 고현성 추정도. @최대윤
1991년 동아대 조사보고서에 발표된 고현성 추정도. @최대윤

 

★ 한국사 산책 = 초유사(招諭使) 김성일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이기도 한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은 1590년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통신사 부사로 일본을 다녀왔다. 당시 통신사 정사인 황윤길은 반드시 왜군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한 것과 달리 김성일은 일본의 침입은 없을 것이라 보고했다.

이 일로 김성일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파직됐으나 류성룡의 변호로 초유사에 임명됐다. 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를 역임하며 경상도 지역의 의병을 모으고 진주성을 방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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