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엘르메디여성의원 원장
이정필 엘르메디여성의원 원장

#. 임신38주 산모가 진통기를 느끼고 내원했습니다. 진주의 산부인과를 다니는 중인데 분만 준비하고 가야 할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진찰 후 분만병원에 따라 입원을 권하는 시기는 다를 수 있음을 설명하고 그곳과 상의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 산모의 친정은 진주인데 남편 직장 관계로 거제에 왔으며 분만·산후조리·육아를 혼자 힘으로 할 자신이 없고 거제시의 지원이 없어 아예 친정 근처의 분만병원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산모는 2일간 진주의 산부인과에 입원해 진통을 기다린 끝에 분만을 성공했습니다. 

#. 새벽 5시에 당직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군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갑자기 양수가 터져 근처의 산부인과를 수소문했으나 분만이 가능하다는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빨리 거제로 돌아오라고 안내했고 진통이 심해져 내원 후 30분 만에 분만이 이뤄졌습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 새벽 두 시, 당직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며칠 후 제왕절개 예정인데 양수가 터지면서 탯줄이 다리 사이로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당장 병원에 오라하고 급히 수술 준비를 했습니다. 10분 만에 장평에서 달려온 산모를 진찰하니 아직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었습니다. 응급수술 끝에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장평성당 다니신다는 친정엄마가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레지던트시절 교수는 '최고의 분만의사는 산모 옆에 있는 의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많은 산전 검사를 했어도 언제 올지 모르는 진통에 대한 5분대기조가 돼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란 뜻입니다.  

한때 거제의 출산율이 전국 최고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IMF도 울고 간 거제의 산업 활황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지 않는 분위기에 더해 얼마 전까지의 경기침체는 젊은 인구가 거제를 떠나게 했으며, 종합병원·분만병원들은 분만실·신생아실을 폐쇄했고 동료의사들은 분만을 포기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겼으며 그 결과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걱정하는 단계까지 오게 됐습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이 쏟아지고 있으나 대미를 장식해야 할 분만병원은 붕괴 직전입니다. 임신뿐 아니라 안전한 출산까지 전 과정에서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저출산 문제는 정부 차원, 또 각 지역사회의 상황에 따른 지원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올해 2023년 정부는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건강보험료 체계에 지역 수가 등을 도입했습니다. 지역에 분만병원이 없어 산모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황당한 경우를 막기 위해 시·군 지역 분만병원에 대한 추가 보상수준을 최대 3배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는 지역사회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한 취지로 생각됩니다만 현재 최일선에 있는 산과의사로서 체감되는 효과는 아직 없습니다. 

거제시의 경우 지역사회 산모·신생아 그리고 분만병원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인근 통영시·진주시의 정책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수년 전부터 거제의 분만병원은 수익이 나지 않아 대우병원·백병원 등 종합병원도 포기한 분만을 홀로 남은 개인분만 병원이 계속된 적자를 무릅쓰고 지속하기는 힘듭니다. 

앞으로 분만이 늘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분만병원의 적자도 더 커지겠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데 분만병원도 그래야 할까요? 대도시와 지역사회는 분만 인프라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자기 지역의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하며, 한밤중 응급분만이 생겼을 때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분만병원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거제에 거주하면서 거제에서 분만할 수밖에 없는 산모들을 헤아려, 산전 진찰·분만·산후조리에 대한 관 주도의 지원은 필수라 생각됩니다. 

산모를 분만 유랑자로 만들 수 없습니다. 거제시와 지역 종합병원·분만병원이 머리를 맞대면 얼마든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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