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남자가 하이힐을 신고 다니면 아마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나올만하다. 그러나 본디 하이힐의 용도는 중세 기사들이 말안장과 연결된 등자에 발을 고정시키기 위한 남성용 신발이었는데 여성용 패션으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현대 여성의 패션용품 중에는 본래 남성용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다. 미니스커트 역시 고대 로마 시절의 남성복이었다. 배와 허리를 조여 주어 몸매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여성용 속옷인 코르셋도 기사들의 흉갑에서 비롯됐다.

스타킹도 그렇다. 프랑스 국왕 루이14세가 스타킹을 신고 있는 그림에서 보듯 남성용이었다. 그 당시에 스타킹을 신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크 재질로 직접 짠 수공예품이었기 때문에 수량이 한정적이고, 가격 또한 만만찮아 귀족이나 기사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중세시대 기사들은 철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갑옷은 불편했다. 무엇보다 무겁다. 세계문학사의 고전이 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보면 30㎏이 넘는 갑옷을 입고 정의의 기사라며 뒤뚱거리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문제는 갑옷이 피부에 닿아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이에 개발된 것이 스타킹이다. 스타킹은 철갑과 피부 사이에서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요즘도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 애인이 보내준 스타킹을 신는 경우가 있다. 마찰을 줄여 물집이 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스타킹이 생겨날 때의 목적과 비슷하다.

1589년 영국인 목사 윌리엄이 양말 짜는 기계인 편물기를 만들면서 상류층 여자들부터 스타킹이 퍼지기 시작해, 20세기 이전까지 남녀가 함께 사용하다가, 1920년 이후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지면서 스타킹은 여성용 패션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1938년 나일론의 발명과 1960년대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무렵 팬티스타킹이 등장하면서 스타킹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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