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흔적만 남아있는 '거제수월리산성'. @최대윤
현재 흔적만 남아있는 '거제수월리산성'. @최대윤

공도정책(空島政策)은 섬 거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외부세력으로부터 섬을 보호할 힘이 없을 때 섬을 비워 변방 주민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다. 

고려말 공도정책과 거제도민의 거창·진주지역 이주는 거제의 역사를 설명하는 각종 문헌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때 거제의 역사는 섬이 아닌 이주 지역이었던 거창에서의 역사였으며 기록도 많지 않다. 

거제도에 다시 거제현이 설치되고 백성이 거주하게 된 시기는 세종 4년(1422)으로 거제현은 섬으로 복귀한 이후 여러 차례 치소를 이동한다.

이는 세종 즉위년(1418) 조선이 마지막 대마도를 정벌 준비를 위해 거제에 병선과 수군을 주둔시키고 목책을 설치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거제의 수군진 중 가장 먼저 설치된 영등포진도 대마도정벌 준비 시기인 세종 즉위년에 다시 옮겨졌다.

세종 1년(1419) 대마도를 정벌한 조선은 고려 때 공도정책으로 이주했던 거제를 비롯한 섬 고을의 주민들을 다시 환도 시킨다. 

거창과 진주지역에서 돌아온 거제도민은 수월평(水月平·수월리)에 목책을 설치하고 임시 관사를 세워 치소를 옮기는 계획을 세웠다. 

수월평 다음으로 선정된 치소는 사월포(沙月浦·사등리)다. 1426년 사월포로 이동한 거제사람들은 1448년까지 사등성을 쌓고 살다가 다시 1451년 10월 고정부곡(고현동)으로 옮겨 살게 된다.  

 

★ 한국사 산책 = 위화도회군

고려 말 이성계와 최영은 요동정벌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고려는 최영의 주도로 명나라를 징벌하기 위해 요동 정벌을 추진했고, 이성계는 현실적인 한계를 들어 강력하게 반대했다. 우왕의 지시로 이성계가 지휘하는 요동 정벌군이 압록강까지 나아갔으나 위화도에서 군사를 되돌린다. 이후 이성계 일파는 우왕과 창왕, 공양왕까지 폐위하고 1392년 조선을 건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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