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그녀는 다른 투석 환자들과는 달랐다. 투석을 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그녀의 얼굴은 거무튀튀하지 않았고 우울해 보이지도 않았다. 

만성신부전은 천형과도 같다. 과거에는 그랬다. 콩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 일주일에 세 번씩, 서너 시간이나 기계로 몸에 쌓인 독을 빼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환자들의 얼굴은 잿빛에서 흙빛으로 변하곤 한다. 요독이 쌓인 혈액을 한꺼번에 걸러내기 위해서는 굵은 바늘을 찌를 혈관을 팔에 만들어야 한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미리 준비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자고 하면 환자들은 겁부터 먹는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투석을 받기 위해 가슴에 관을 박은 채 몇달을 지내야 하는 끔찍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아들이 콩팥을 주기로 했어요. 저는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환자들 대부분은 장기이식센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자기에게 맞는 뇌사자가 나타날 때까지 몇년의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다행히 연락이 오면 한밤중에라도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가족이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이식받는 건 불가능하다. 이식센터에서 돈거래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한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터미널 화장실에 늘 붙어있던 신장을 산다는 명함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족이 콩팥을 이식해 준다는 말을 오랜만에 들은 터라 같이 기분이 좋았다. 

"잘됐네요. 착한아들을 둬서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셋인데 서로 주겠다고 난리예요."

그녀가 소리내 웃었다. 그녀는 수술 전날까지 한 달을 더 병원에서 투석을 받다가 수술을 위해 부산으로 갔다. 콩팥을 이식받은 경우에도 간혹 거부반응이 일어나 다시 투석치료를 받게 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과 수술 후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 치료의 효과가 좋아 거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레지던트 수련을 받을 때만 해도 신장 이식은 꽤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서울에서만 받을 수 있는 수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대학 병원에서 쉽게 이식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뇌사자의 장기이식 건수는 늘고 있지만 가족이 주는 경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족 중에 이식해 줄 만한 사람은 없나요?"
"자식한테 그런 부담을 줄 수 있나요. 혹 하나 있는 콩팥이 다치기라도 하면. 아비 때문에 자식이 투석을 받게 할 수는 없잖아요."

얼마전 상담했던 60세가량의 남자 환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투석을 처음 받게 되는 많은 환자의 생각일 것이다. 인체의 장기중에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을 주지않는 걸 두 가지만 꼽아본다면 쓸개와 하나의 콩팥이다.

콩팥은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제몫을 할 수 있다. 과거에 콩팥을 가족에게 이식해준 사람중에 남은 콩팥에 문제가 생겨 자신도 투석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투석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 가지 질환중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당뇨·고혈압·사구체질환이 그것이다. 

이중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지는 경우가 제일 흔하다. 나이가 들면서 당뇨가 찾아오고 수명이 점차 늘어나니 신부전 환자도 늘고 있다. 신장은 한번 손상되기 시작하면 회복되지 않는다.

얼음이 막 녹기 시작한 이른 봄, 강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가듯 한순간에 신장의 기능은 나빠진다. 많은 질병이 있는 고령의 환자가 굳이 가족의 신장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젊은 사람에게는 절실할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두 개의 콩팥을 준 건 어쩌면 가족 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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