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윤일광 칼럼위원

혼례가 끝난 저녁이 되면 신랑과 신부는 첫날밤을 맞게 된다. 이때 '신방 엿보기'라는 풍습이 있다. 가까운 친척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까지 와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방안을 엿보기 시작한다. 장모가 나와 구경꾼들을 쫓아내지만 그건 시늉일 뿐이다. 그러다 신방에 촛불이 꺼지면 사람들은 모두 알아서 물러났다.

요즘 눈으로 보면 고발이라도 당할 일이지만 우리의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고, 풍습의 기원에는 몇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는 조혼의 영향이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첫날밤이 서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험 있는 여인들이 문구멍으로 보면서 "족두리부터 벗기고, 다음은 저고리 고름 풀고…" 이런 식으로 훈수를 뒀을 것이다.

둘째는 어린 나이에 혼인한 신랑신부가 첫날밤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뛰쳐나오거나, 신방에서 처음으로 본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도망치는 것을 막고자 생겨난 풍습이라는 설이다.

셋째는 신랑에 비해 신부는 대개 서너 살 많았는데 동네에서 평소 신부를 짝사랑하거나 은밀히 정을 통해온 자가 첫날밤에 신랑을 해치고 신부를 데리고 도망가는 일이 있은 뒤부터라는 설도 있다. 사람들이 신방 앞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지켜주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신랑신부가 자는 방에 시누이가 사흘 동안 같이 자기도 했다.

네 번째는 옛날에 좀 모자라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첫날밤이 걱정돼 "첫날밤에는 신부를 잘 벗겨야 하느니라" 하고 가르쳤다. 신부 어머니도 첫날밤을 맞을 어린 딸이 걱정돼 "첫날 밤에는 남자가 벗겨도 참아야 하느니라"고 일렀다. 마침내 첫날밤을 맞았다. 바보신랑은 '벗긴다'는 말을 백정이 짐승의 가죽 벗기는 것으로 알고 칼로 신부를 벗겨버린 것이다. 또한 착한 신부는 벗겨도 참아야 한다기에 참고만 있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참으로 허무맹랑하게 들리겠지만 한국의 과거 생활풍습 등을 정리한 '한국일생의례사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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