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열 전 거제교육장
이승열 전 거제교육장

늙으면 손가락 감각이 둔해져서 작은 물체를 잘 놓친다. 운동의 교치성도 떨어져서 맵시 있게 잘하던 운동기능도 어리바리해지기도 한다.

그것의 태생적 원인을 따지면 까마득한 인류의 직립보행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약 500~700만년 전 아프리카 유인원으로부터 사람과에 해당하는 인류로 분화해 나온 이후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약 3~4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추정한다.

인류학자들은 인류진화의 역사를 직립보행으로부터 급격히 시작된 것으로 본다. 자유로운 손으로 도구를 사용하게 됐고 초원에서 생활공간을 이동하며 삶도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꼿꼿하게 서서 생활하게 됨으로써 경추와 척추가 짓눌려져서 노화의 대표적인 퇴행 질환인 '경추추간판탈출증'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감각이 둔해지기도 하고 찌릿찌릿한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한결같이 작업의 섬세함을 떨어뜨린다.

늙을수록 작은 물건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갑상선항증진성 약인 '씬지록신정'은 현미 한 톨보다 작아서 도정된 백미만 하다.

이렇게 작은 알약을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노안으로 더듬거리다가는 떨어뜨리기 십상인데, 일단 떨어뜨렸다 하면 다시 찾아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단 떨어지면 이 작은 알약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허둥대며 덤비다가는 영 못 찾게 된다. 대처 비결은 소리의 추적에 있다. 아무리 작은 알약도 구르는 소리가 있다. 이 알약 구르는 소리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어디서 멈췄는지를 파악한 후 그 지역을 집중적으로 뒤져야 겨우 찾을 수 있다.

반면에 반대로 소리를 추적해서는 낭패를 보는 일도 있다. 거의 20년 전 거제대학교에서 교양체육으로 축구를 한 학기 맡았던 적이 있다. 운동장 서편의 경사지는 거의 45도 각도의 언덕인데 수업중에 꼭 몇번씩은 축구공이 넘어갔다. 그럴 때 축구공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소리를 기준으로 대충 수색하다가는 수업을 다 마칠 때까지도 못 찾을 정도로 잡초가 우거졌고 경사가 급했다.

일단 축구공이 펜스를 넘어가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학생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유의 깊게 봐줘야 한다. 그런 후 공을 찾으러 간 학생에게 위에서 물 빛깔과 물속 그림자의 변화를 감지해 육소장망 숭어 그물을 올리는 위치와 타이밍을 지시하는 어로장처럼 이리저리 지시하며 찾는 장면을 많이 봤다.

"아니, 거기보다 조금 아래. 조금 더 아래. 그래, 거기서 왼쪽으로 10m. 오케이."

배를 만드는 도시의 청년들은 소리와 위치의 용도를 구별해 대처했다. 공을 차낸 학생은 군말 없이 공을 찾으려 내려갔는데, 복학생이든 아니든 구분이 없었다. 그들은 그때 이미 공정하고 평등했다.

최근 세대 갈등, 심지어 남녀갈등을 이용하는 정쟁이 물 만난 듯하다. 특정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갈등을 조장하는 모양새는 꼴불견이기까지 하다. 전장에서 힘겹게 싸우는 장수 등 뒤에서 늙은이들은 물러나라고 외쳐 대는 젊은 최고위원의 요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으며 노회한 정치인의 언어를 입에 달고 사는 젊은 당대표의 쇄락함은 잃은 지 벌써 오래 됐다. 반면에 갑자기 음색을 바꿔서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까지 언급하는 노정치인의 변신은 공해에 가깝다.

청년의 시선과 판단이 늘 신선하고 미래지향적인 것은 아닐 것이고 나이 든 사람의 잔소리가 늘 퇴행적일 것은 아닐 것이지만 세대라는 기준으로 격절하는 순간 세대 갈등으로 비약해버린다.

풋 익어도 먹지 못하고 농해도 먹지 못한다. 단지 알약 구르는 소리에 집중할 줄 아는 지혜와 축구공 떨어지는 지점을 보기 위해서 눈에 쌍심지를 켜는 열정이 있으면 다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런 일상에 무슨 세대나 성별까지 들이대는가.

숭어를 누가 잡는들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모르겠다면 여기 배 만드는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물어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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