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나 동물의 힘을 이용했던 시절에 증기기관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수레나 마차가 운송수단이었던 1825년 영국에서는 세계최초로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 실내에 6명이 타고 나머지는 지붕에 올라타는 18인승 2층 버스였다. 차가 달리는 중에도 석탄으로 불을 때서 증기를 만들어야 했기에 버스의 무게는 무려 18톤이 넘었다. 차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매연, 소음이 문제였다.

간혹 엔진이 폭발하거나 마차와 부딪치면서 생명을 잃는 일도 일어났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동차의 출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마차업자들의 항의였다. 마차회사는 대기업화되어 정부와 왕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거대한 조직이었다.

영국의회는 증기자동차가 도로교통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워 1865년 자동차를 규제하는 법률을 만든다. 그 내용은 참으로 어이없다. 시속30㎞를 달릴 수 있는 차를 교외에서는 최고속도 6.4㎞/h 이하로, 시가지에선 마차보다도 느린 3.2㎞/h로 제한했다. 그리고 자동차에는 세 사람이 의무적으로 탑승해야 했는데 운전수, 화부 그리고 붉은 깃발을 든 기수였다.

기수는 자동차 앞에서 걸어가며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불을 흔들며 "자동차가 갑니다."하고 소리치는 역할이었다. 가다가 말과 마주치면 무조건 자동차를 정지시키고 말이 놀라지 않게 해야 했다.

이 법이 그 유명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또는 '적기법(赤旗法·赤旗條例)'이라 부르는 세계최초의 교통법이다. 이 법이 무려 30년간이나 시행되면서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은 세계최초로 자동차를 만들고도 독일과 미국보다 자동차산업 후진국이 되고 말았다. 죄지은 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 선량한 국민들의 생각인데, 수사조차도 막는 소위 검수완박은 기수가 흔드는 붉은 깃발법이 되어 정의와 공정을 후퇴시키지나 아닐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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