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1955년. 32cm × 49.5cm. 종이에 연필 유채. 개인소장)

이중섭은 일본 유학시절인 1945년 학교 선후배 사이였지만, 후에 그가 ‘이남덕’이라 이름한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결혼하였습니다.

일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사코는 그의 아버지가 가족을 굶기지 않는다면 화가라는 직업은 개의치 않는다며 결혼을 승낙하자 단신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이중섭과 혼례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6.25 전쟁의 발발로 깨어졌으며 평안도 지주의 아들이었던 이중섭은 황급히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피난 생활은 부산에서 제주도로 다시 부산으로 이어졌으며 고난한 피난 생활은 결국 아내 이남덕의 건강에 이상을 초래했고 중섭은 두 아들과 함께 아내를 일본으로 보내게 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의 시대를 보낸 근대기의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랬듯 이중섭의 삶 역시 별반 다르진 않았지만, 고난과 궁핍한 중에서도 위로와 용기를 주는 가족과의 이별은 그의 삶을 차츰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그의 심정은 이중섭이 아내 남덕과 아들들에게 보낸 사랑과 그리움, 공유한 짧은 추억을 담은 편지그림에 절절히 담겨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구상 가족’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몇 번이고 약속했지만 결국에는 지키지 못했던 이중섭이 화면 중앙에 아들을 자전거에 태워주면서 얼굴 가득 미소 짓는 구상과 너무 좋아 얼굴이 상기돼 볼이 붉어진 아이와 그리고 부자(夫子)를 바라보는 그의 부인과 큰아들, 부인 옆의 전쟁통에 구상이 맡아 기르는 소설가 최태웅의 딸 그리고 자신을 화면 우측 툇마루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그려 넣은 작품입니다.

오른손을 들어 마치 아이들에게 ‘정말 멋진 자전거야’ 하고 말을 건네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이에게도 자전거를 태워주고 싶은 간절함이 애틋하게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중섭이 그린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의 주제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다 안다고 하지만 늘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공유하려면 좋은 그림에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턱이 길어 ‘아고리’라는 별명을 가졌던 중섭은 서른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그림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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