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칼럼을 읽고 남해에 계시는 원로문인께서 영등할만네에 대한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문자로 보내주셨다. '할만네가 되면 대나무를 꺾어 거기에 여러 색깔의 천을 달아 참종이로 묶고, 깨끗한 황토를 한 주먹 놓았다. 밥을 짓는데 이때 우물물은 여러 사람이 먹으니 안 되고 멀리 산밑에 있는 샘물을 길어왔는데 그때 따라간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영등신앙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영등할매 숫자부터 다르다. 혼자이거나 셋인 곳도 있다. 이때 각각 그 이름이 상등할매·이등할매·하등할매거나 큰할매·중간할매·막내할매 또는 큰손·중간손·끈티손으로 부른다. 영등할매가 지상에 내려와 머무는 기간도 스무날형과 보름형이 있다. 거제·통영·고성 등 지역에서는 영등할미가 세 사람이고 20일형이다.

제의 의미도 농사가 주인 내륙지방에서는 농신(農神), 해안지방에서는 풍신(風神)의 성격이 강하다. 내륙에서는 이월 초하룻날을 '머슴날'이라 부른다. 오죽했으면 '2월 영등밥을 먹고 나면 머슴들이 썩은 새끼줄에 목을 맨다'거나 '며느리가 2월 초사흘부터 울타리 잡고 운다'고 했다. 이는 고된 농사를 예고하는 말이다.

영등할매를 모시는 곳도 정지 살강 위나 부뚜막에 푸른 댓가지 3개를 교차해 한 자쯤 되는 곳을 묶어 색실·헝겊·백지를 달고 그곳을 모시거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아침마다 물을 갈아주는 집도 있다.

영등음식으로 내륙에서는 백설기를 만들어 시루째로 올리고 가족수만큼 숟가락을 꽂는다. 해안에서는 팥밥에 도다리쑥국을 끓였다. 영등음식은 남에게 주지 않고 집안 식구끼리만 먹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이웃과 함께 나눠 먹는 곳도 있다. 민속이나 풍습은 그 당시의 문화였다. 문화는 미신이 아니라 민족적 관행에 따라 전승돼온 의식이며 놀이다. 그때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제라도 이런 문화를 발굴해 보존해 둘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