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에게는 자식처럼 아끼는 마속(馬謖)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보낸 편지에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대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사이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마속은 뛰어난 장수였다. 제갈량이 마속을 참수하려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장수들이 마속은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장수이므로 살려야 한다고 만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법을 엄정히 지켜 기강을 바로 세워야 했기에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

우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소리 내어 우는 것과 소리 없이 우는 것이다.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곡(哭)이라 하고, 소리 없이 우는 것을 읍(泣)이라 한다. 읍은 안으로 삼킨 울음이요 폐부를 찌르는 울음이다.

223년 촉(蜀)의 유비가 오나라와의 이릉전투에서 대패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유선이 뒤를 이었다. 228년 제갈량은 위나라 사마의 군대와 싸우기 전에 유비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는 이를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명문이다.

제갈량은 마속에게 전략상 요충지인 가정(街亭)의 길목에 진을 치고 적의 접근을 막으라는 군령을 내린다. 하지만 마속은 자기 능력만 믿고 방어가 아니라 전투에 이길 욕심으로 평지가 아닌 산등성이에 진을 치고 적을 유인하여 역습하려다가 오히려 대패하고 만다. 이 때문에 제갈량의 군대는 한중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마속의 행동은 요즘 말로하면 자기정치에 빠진 것이다. 자기가 이 싸움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제갈량은 일갈했다. "내가 가정을 지키라 했지 내가 언제 사마의를 이기라고 했느냐?" 싸움에 졌기 때문에 목을 베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중에 군율을 어기고 일탈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 마속의 목을 쳤다. 이 고사가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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