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에 가면 가람의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전각이 산신각이다.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인상 좋은 할아버지와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본래 산신령은 호랑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 인자하고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화현(化顯)하여 나타나게 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산을 신성하게 여겼다. 소원을 빌러가는 곳도 산이요, 죽어서 돌아가는 곳도 산이다. 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기고 거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산의 품성을 닮는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적 지형이 산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산악숭배사상으로 발전했고 여기서 인격신인 산신을 등장시킨다.

산신은 마을의 안녕과 발전, 개인의 생사화복까지 주관하는 신령한 존재다. 그럼 산신은 남성일까? 아니면 여성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산신각에 그려져 모셔진 대부분의 산신은 할배의 모습이다. 여성인권단체에서는 왜 산신령을 남자가 독점하느냐고 항의라도 할 일이다.

그런데 본래 산신은 남성신이 아니고 여성신이었다. 산신은 생성과 풍요를 관장하는 은혜로운 여성이었다. 지리산신은 지리산성모(智異山聖母)이고, 노고단은 노고신(老姑神) 곧 할미신를 말한다. 부산의 주산인 금정산 고당봉(姑堂峰)도 할미신이다. 계룡산 동학사의 산신각에는 탱화가 아닌 조각상으로 예쁘고 단정한 트레머리에 댕기를 두른 여성신이다.

아주·칠천도·가조도의 거제 3대 옥녀봉도 여성신의 흔적이다. 옛날부터 주산 아래 고을의 치소가 형성되는데 대개의 주산은 신화나 전설이 있다. 거제의 산 중에서 둔덕 우두봉이 마고할미의 설화를 가지고 있다. 둔덕 거림리가 상군(裳郡·거제의 옛 이름)의 치소였고 거제의 주산은 우두봉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일찍이 인류는 모계중심 사회였다. 모든 사물의 중심은 여성이었다. 그러다가 부계중심사회로 이행하면서 남자들은 산신각을 만들고 산신조차도 할배신으로 바꿔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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