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오천원권 지폐의 모델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다. 그리고 오만원권 지폐의 모델은 어머니 사임당 신씨다. 아마 세계적으로 모자가 동시대의 화폐 모델이 된 사례로는 유일할 것이다. 율곡 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이면서도 유능한 정치가로 십만양병설이나 대동수미법, 군정개혁 등을 주장했다.

조선시대에 출세의 첩경은 과거급제였다. 과거시험은 보통 9세부터 일평생을 바쳐 공부해야 한 번 될까 말까한 시험으로 문과 평균 합격자 나이가 35세였다. 할아버지가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이고, 아버지가 경상관찰사를 지낸 대단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백곡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59세가 되어서야 겨우 과거합격을 했으니 여간 어려운 관문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급제를 용(龍)에 비유해서 등용(登龍)이라고 했을까. 이런 과거를 13세 나이에 진사시 장원을 시작으로 무려 아홉번이나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일컬어지는 천재가 바로 율곡 선생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칠 때마다 다 걸린 건 아닌 것 같다. 1558년(명종 13년) 23세 때, 퇴계가 율곡에게 보낸 편지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젊은 나이에 과거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다'고 했으니, 자네가 이번 과거에 실패한 것은, 아마도 하늘이 자네를 크게 성취시키려는 까닭인 것 같으니 자네는 아무쪼록 힘을 쓰게나." '퇴계전서 권14' 서문에 나온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같은 시험에 다시 도전하는 것을 재수(再修)라 하고 세 번째면 삼수(三修)라고 한다. 같은 시험을 아홉 번 도전하면 구수(九修)가 되는데, 여간한 인내와 강단, 포기할 줄 모르는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 후보중에 사법고시 구수의 별난 이력을 가지신 분이 있는데 어떤 일을 쉽게 포기하려는 요즘의 청소년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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