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사 조경의 선정비
통제사 조경의 선정비와 매치처비

경남 거제시 사등면 오량리 신계마을 들판 이팝나무 아래에는 각각 '가선대부삼도통제사조공경애휼역졸비(嘉善大夫三道統制使趙公儆愛恤驛卒碑)'라는 글자와 통제사조공경선정비매치처(通制使趙公儆善政碑埋置處)라고 쓰인 비석이 있다. 

비석의 주인공은 제107대 통제사를 지낸 조경과 제142대 통제사 조심태다. 1739년(영조 15년) 통제사로 부임한 조경은 당시 둔덕면 한산도에 제승당을 중수하고 이순신 유허비(遺墟碑)를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92년 7월7일 견내량과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친 이순신은 1593년 8월1일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고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하면서 현재 제승당 자리에서 막료 장수들과 작전 회의 장소인 운주당을 세웠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운주당은 폐허 됐고 이후 제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1740년(영조 16년) 유허비를 세우면서 운주당 옛터에 다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제승당에 걸려 있는 '制勝堂' 현판도 조경이 쓴 글씨로 알려졌다. 

또 조경은 충열사의 장서(藏書)를 마련하고 통제사 재임시절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겨 은혜를 베푸는 등 명망이 높았던 인물로 훗날 오양역 주민을 비롯한 거제 백성들은 조경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뜻을 모아 선정비를 세웠다. 

그런데 정조 11년(1787) 5월에 부임한 제142대 통제사 조심태가 부임 후 이 비석을 발견하고 묻어 버린다. 

이 두 비석은 1976년 5월31일 경지정리사업으로 발굴됐는데, 비석의 묻은 유일한 힌트는 통제사조공경선정비매치처라는 비석에 쓰인 '숭정삼무신삼월일불초고심태근서추각(崇禎三戊辛三月日不肖孤心泰謹書追刻)'이라는 내용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해석하면 '1788년 3월 부모를 잃은 불초한 아들 조심태가 삼가 뒤이어 세겨 씁니다' 정도로  조심태가 아버지 선정비를 확인하고 주민에게 부담시켰다는 거제시지명총람의 기록과 천한 백성들이 아버지의 비석을 세운 일을 못마땅하게 여겨 묻었다는 설, 비문에서 가선대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누가 될 것같아 묻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