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란 자기를 존귀하다고 믿는 마음을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잘 참지 못한다. '인류(人類)'나 '영장(靈長)'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사람이 동물과 다르다는 자존심에서 비롯된 용어다.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고, 모든 사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다. 우주까지도 내가 있는 지구가 중심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사람이 모든 사물의 중심이고 최고라는 꿈을 깨라는 거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하려면 목숨까지 내 놓아야 했다.

이번엔 찰스 다윈이라는 사람이 또 한번 인간의 자존심을 뭉개 버렸다. 사람이란 신이 창조한 거룩한 존재가 아니고 그저 다른 동물과 다름없이 진화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조상도 따지고 올라가면 뭐 원숭이와 비슷한 그런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무슨 망측한 일인가? 사람을 그냥 별 볼일 없는 동물의 일원으로 전락시켜버린 것이다. 그나마 사람은 이성(理性)을 지닌 고상한 존재라고 자위했다. 어느 날 지그문트 프로이트라는 정신과 의사가 희한한 말을 한다. 인간의 이성은 빙산의 일각이고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는 주체라고 말했다. 더구나 사람은 성적(性的)인 대상에 매력을 느끼는 성적욕구가 삶의 에너지(libido)라고 규정한다. '뭐 이런 변태 늙은이가 있나'하고 혀를 찰 일이다.

이제 더 큰일이 생겼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자존심을 짓밟기 시작한다. 2019년 12월21일, 우리나라 최고의 바둑고수 이세돌이 인공지능 한돌과의 은퇴대국에서 지고 말았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사람보다 똑똑한 지능에, 탤런트보다 잘생긴 로봇이 출현하면 남편이나 아내라는 존재가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 잘생기고 머리 좋고 말 잘 듣는 아바타와 같이 살면 더 편하니까. 이건 인류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인간 가치 자체가 무너지고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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