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8월6일 지방문화재 자료33호로 지정된 아양리 삼층석탑(鵝陽里三層石搭)은 대우조선소가 들어서며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인근인 현 위치로 옮겨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현 위치도 대우조선소 안이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옛 절터 근방의 사찰인 장흥사로 이설해서, 역사와 문화재적 가치를 알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옛날 옥녀봉 중턱에 신라시대 법률사(法律寺)란 절이 있었고, 그 지역에 이 탑이 있었다고 해서 이 지역을 탑골이라 했다. 탑골 절터 주변에서, 1935년 아양리 해변가 마을에 살던 박학중(朴學重)씨가 논을 갈다가 쟁기 끝에 걸리는 것이 있어 발굴해 보니 삼층석탑이었다.

그 석탑의 중간부분의 탑신과 보주(寶珠)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만들어 세우면서 석탑 상단에 석씨(釋氏) 유물이라 적었다. 또 착한 일은 적다할지라도 먼저 행하고, 악한 일은 비록 적다할지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교훈의 글을 적어 놓았다.

높이 2.5m의 삼층석탑은 신라시대 거로현(居老縣)이 있었던 장흥사 주변 절골에 세워져서 1300여년 동안 옥포만을 굽어보면서 묵묵히 서있다.

우리 거제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귀중한 석탑을 장흥사로 이설해 우리문화를 다시 알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아양리 삼층석탑은 탑신 일부가 유실됐지만 일층 옥신석과 3개의 옥개석은 원래의 탑에서 나온 유물로 옥개석 층급이나 탱주의 조각 기법이 뛰어난 문화재다.

옥개석의 양쪽 끝이 위로 향한 것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 석탑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옥개 받침의 모양과 낙수면의 경사 등 석탑의 양식이 고려 시대 석탑보다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더 가까워 보이는 데다 아주현에 위치했던 법률사와의 연관성 등을 고려할 때 통일 신라 시대와 고려시대 사이에 축조된 탑으로 보고 있다.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알려지면서 아주현과 법률사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발견 직후 석탑은 아양리 마을 중간으로 통하던 길 위쪽에 세워뒀다가 1973년 대우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이설이 불가피해져 현 위치로 옮겼다.


△옥신석 : 석탑의 몸체를 이루는 돌
△옥개석 : 탑에서 탑신의 위에 지붕 모양으로 덮는 돌
△탱주 :  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기둥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긴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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