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네덜란드)
(1667 Oil on canvas·89.5×78.1㎝·Frick Collection, New York)

편지를 쓴다. 꽃잎이 날리고 바람이 살결을 스치는 봄날. 해는 쉽게 고개 마루를 넘지 못해 그림자가 길게 꼬리를 무는 오늘은 젊은 날의 어느 하루처럼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항상 젊은 볼과 빛나는 머릿결, 가슴을 설레게 하던 붉은 입술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당신에게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쓴다….
네덜란드의 17세기 화가 베르메르는 그렇게 요란하게 우리에게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비숫한 시기의 렘브란트 같은 걸출한 천재에게만 눈길을 주는 풍토속에서 늦게 조명된 화가 다. 보석 같은 그의 그림들이 찬란한 빛을 감출 수 없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대략 36점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작품이 전해주는 미감은 그 울림이 매우 깊다. 순간포착에 뛰어났으며 순간의 정적과 고요함은 영원으로 향하는 울림이 있어 그를 '고요의 작가'라 칭송하기도 한다.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주는 신선하고 신비로운 느낌 역시 소녀의 앳되고 꾸밈 없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영원의 생명을 불어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혹자는 그 작품을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칭송하기도 한다.

베일에 쌓인 신비감이 더한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편지를 주제로 한 작품을 몇 점 남겼다. 내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편지를 든 하녀와 여인'이라는 작품은 유부녀의 사랑놀음을 주제로 한 듯하다.

거친 모직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노동으로 붉게 그을린 단단한 체형의 하녀와는 큰 대비를 이루는 여인은 세련된 디자인의 호사스러운 모피옷을 입고 있다. 우유빛 하얀 피부로 빛나는 그녀는 하녀로부터 전해 받는 편지에 조금은 곤혹스러운 듯 한 표정인데 짐짓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한 표정의 하녀와는 모든 면에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그 시대 조금은 문란한 상류층 사회의 자유연애 풍토에 대한 풍자인 듯 해보이지만 그의 작품 전면에서 흐르는 사물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사람에 대한 깊은 상념을 미뤄보면 올바른 평가는 아닌 듯 하다.

작가는 어떤 의도이든 스마트폰으로 사랑을 전하고 이별을 고하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에 편지를 쓰고 중간에 사람을 끼워 마음을 전하는 그 옛날의 향수가 그립기는 하다. 꽃잎이 눈처럼 날리고 햇살은 빛나지만 해 기우는 초저녁 엷은 어둠이 내리면 호젓한 상념에 잠길 때가 있다. 그러면 그리운 이 에게 편지를….

<글 : 권용복 서양화가>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